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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 설화

한글무학대사 설화
한자無學大師 說話
유형문화예술
키워드무학 자초, 풍수 설화
시대고려, 조선
무학대사가 풍수가, 영웅, 신승, 효자였음을 이야기하는 인물 전설
무학 대사에 대한 전기와 설화 자료는 다양하게 전해진다. 그런데 사실 기록의 전기 자료는 변계량(卞季良)이 무학의 제자 조림(祖琳)이 지은 행장을 바탕으로 쓴 「묘엄존자탑명(妙嚴尊者塔銘)」을 제외하고는 허구성이 강한 설화 자료가 대부분이다. 변계량이 쓴 탑명은 유학자에 의해 쓰인 것이지만 고승들의 일반적인 일대기 구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수도 한양을 찾는 풍수담이 더해진 형태다. 무학이 나옹을 비롯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선문답을 주고받았던 내용이나 선시, 임종게 등을 기록함으로써 선사로서의 풍모를 극대화하고 있다. 여기에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할 때 터 잡기를 청한 풍수담, 승려 찬기(贊奇)가 부처님 정수리의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무학대사를 보는 임종몽(臨終夢) 등 설화적 면모를 보인다. 구비전승된 무학대사 설화는 풍수 설화를 기본으로 하면서 문화적 영웅, 신승, 효자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준다. 풍수 설화는 무학이 풍수가로 한양 천도를 이끈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설화는 무학이 풍수가로 뛰어난 예지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설화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인물로도 그려진다. 각 편들 중 「명당을 찾아주는 무학」 유형에 속하는 이야기들은 길지를 택하여 묘를 쓰고 궁터나 성터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상황에서 무학이 나타나 복을 부를 땅을 일러 주는 이야기들이다. 이성계 선대의 묫자리를 일러 주고, 한양 천도지까지 찾아주는 설화들이다. 이러한 설화들은 후대까지 계속 이어진다. 한편 「명당을 볼 줄 모르는 무학」 유형에 속하는 설화들은 이성계의 꿈풀이를 통해 왕사로 책봉된 무학이 길지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다가 밭 갈던 농부나 어린아이가 일러 주어서야 알게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에 대해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무학을 못마땅하게 여긴 민중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기도 하고, 기층민과 수평적 사고를 하는 무학의 민중 친화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무학대사는 영웅의 일대기를 의식한 문화적 영웅 그리기의 대상으로도 나타난다. 처녀가 빨래를 하다 오이를 건져 먹고 무학을 낳고, 눈 위에 버려지고, 학들이 돌봐 준다. 시골 승려의 도움으로 큰 절에 들어가 대사가 된다. 해몽을 부탁하는 이성계에게 왕이 될 것이라 풀이해주고, 이성계가 안변 서광사로 부처님을 옮겨 조선이 500년간 지속된다고 했다.(『한국구비문학대계』 2-3, 1-2, 4-4) 이 외에도 무학이 짚신에 물을 담아 날려서 해인사의 불을 끈 이야기나, 홀어머니가 산길을 다니며 넘어질 것을 염려해 칡넝쿨을 모두 없앴다는 효행 설화 등도 전해진다. 이 역시도 민중 친화적인 무학의 모습을 보여 준다.
· 집필자 : 오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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