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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설화

한글낙산사 설화
한자洛山寺 說話
유형문화예술
키워드낙산사, 관음신앙, 원효, 의상
시대신라
연도671년(문무왕 11)
관련장소낙산사
관련인물의상(義湘), 원효(元曉)
의상이 치열한 기도를 통해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낙산사를 창건하였다는 창건 연기설화
강원도 양양군의 낙산사 설화는 관음(觀音) 신앙과 관련된 문헌과 구전 등으로 다양하게 전한다. 『삼국유사』 권3, 제4 「탑상」 ‘낙산이대성’의 관음설화가 낙산사 창건설화의 원형이며, 후대에 이를 기반으로 변형된 설화들이 전한다. ‘낙산이대성’에는 의상(義湘)과 원효(元曉)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2편이 전한다. 의상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관음의 진신이 낙산사 바닷가 굴속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다. 의상은 재계(齋戒)한 지 7일 만에 용중(龍衆)과 천중(天衆) 팔부(八部) 시종(侍從)의 안내로 관음굴에 들어가 수정염주를 취하고, 동해 용에게서 여의주를 받아 나온다. 다시 7일간 밤낮 기도를 해도 관음보살이 나타나지 않자 이에 낙심하여 의상은 바다에 뛰어든다. 이때 백의관음보살이 바다로 뛰어든 의상을 받아 바윗굴 속에 눕힌다. 관음보살은 깨어난 의상에게 뒷산 위에 대나무 한 쌍이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절을 지으라고 한다. 의상은 그곳에 낙산사를 짓고 관음보살, 수정염주, 여의주를 안치한다. 원효는 관음보살께 참배하고자 남쪽 교외에 이르렀을 때, 희롱 삼아 흰옷 입은 여인에게 벼를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채 익지 않아 줄 수 없다고 한다. 원효가 다시 길을 가다가 개짐을 빠는 여인네에게 물을 청하니, 더러운 물을 떠서 준다. 그는 그 물을 쏟아 버리고 냇물을 떠 마신다. 그때 파랑새가 나타나 “제호(醍醐: 부처의 미묘한 공덕)도 마다하는 화상이여.” 하고는 날아갔다. 파랑새는 관음보살이 변한 것이었다. 원효는 관음을 친견코자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 만날 수 없었다. 13세기 석익장(釋益莊)이 작성한 「낙산사기(洛山寺記)」에는 의상이 14일 동안 관음보살 진신을 뵐 수가 없어 바다에 몸을 던졌고, 동해 용이 그를 붙들어 돌 위에 올려놓았다고 했다. 구전설화 중에는 ‘조리’와 ‘속리’가 등장하는 『관세음보살왕생정토본연경』의 내용을 변용한 낙산사 창건설화도 등장하고, 오봉산이 천하 명당인데 이곳에 낙산사를 잡을 수 있게 산신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집필자 : 오대혁

관련자료

  • 낙산사 연기설화의 구전 양상과 의미
    학술논문 박상란 | 선문화연구 | 3 | 서울: 한국불교선리연구원 | 2007 상세정보
  • 낙산사 관음신앙의 설화적 표출
    학술논문 장정룡 | 정토학연구 | 12 | 서울: 한국정토학회 | 2012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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