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독불공 |
|---|---|
| 한자 | 獨佛供 |
| 유형 | 의례민속 |
| 키워드 | 마지, 합동불공 |
| 세부장르 | 의례, 민속(무형) |
각자 가져온 쌀로 마지를 지어 개별적으로 올리는 불공
1980년대까지는 합동불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에 명절이면 신도들이 각자 공양미를 가지고 와서 그 쌀로 밥을 지어 마지를 올리며 불공을 드렸다. 독불공은 정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사찰마다 이른 새벽부터 쌀자루를 인 신도들이 줄을 이었다. 한 집에서 승려와 짝을 이루어 불단에 불공을 올린 뒤 신중단(神衆壇)으로 옮기면, 다른 승려가 다음 집 신도들과 함께 불단 앞으로 갔다. 이렇게 불단부터 신중단,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독성각(獨聖閣) 등에 차례로 마지를 올리며 불공이 이어졌다.
승려들은 쉴 틈 없이 불공을 이어 갔고, 불공을 마친 신도는 가족 단위로 자신의 마지 밥을 내려 공양하고 갔으니 공양간에서는 가마솥에 불을 때어 종일 밥과 반찬을 만들었다. 독불공은 정월 초이틀부터 시작해 대개 보름까지 이어졌다. 쌍계사 방장 고산(杲山)은 “학인 시절 울산 문수암에 백일기도를 하러 갔다가 정초를 만나서, 독불공을 수백 자리씩 하며 혓바늘이 돋고 입안이 부르터 밥도 먹지 못했다.”라며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각단마다 올린 마지 밥도 엄청난 양이 쌓였다. 독불공은 사찰의 식생활에도 독특한 영향을 미쳐, 남은 밥은 대개 말려서 독에 보관해 두었다가 쌀처럼 다시 밥을 지었다. 솔잎 물에 담가 두었다가 죽을 끓이는 독특한 보관법을 쓰기도 했는데, 이를 ‘송죽(松粥)’이라 부른다. 항아리에 밥을 넣고 솔잎 찧은 물을 부어 두면 자연 방부가 되어서 오래 지나도 상하거나 붇지 않았다.
이처럼 소모적인 불공을 개선하고자 원로 승려들이 생쌀[生米]을 올리도록 권장하여 1970년대부터 ‘생쌀 독불공’이 전국에 퍼져나갔고, 독불공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 합동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불공이었지만, 하나의 관습이 바뀌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자연스러운 수용이 필요하였다. 내가 가져온 쌀로 마지를 지어 부처님께 올리며 발원하고 싶은 마음은 귀하지만, 독불공은 불법에도 맞지 않고 폐해가 깊어 자연스럽게 바뀐 대표적인 불교 세시풍속이다. 이와 무관하게 의례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오늘날에도 독불공은 이어지고 있다.
· 집필자 : 구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