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공양좌목 |
|---|---|
| 한자 | 供養座目 |
| 유형 | 의례민속 |
| 키워드 | 자비량 |
| 세부장르 | 의례, 민속(무형) |
| 시대 | 조선~근대 |
공양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의 법명을 적어 만든 목패
20세기 중후반까지 대방이나 공양간 근처에 승려들의 법명이 적힌 작은 명패를 죽 걸어 두는 사찰이 많았다. 외출하거나 끼니를 먹지 않을 때 자신의 명패를 뒤집어 놓으면, 미감(米監)이 그것을 보고 인원수대로 쌀을 내어 공양주에게 주었다. 사찰의 식량 관리는 철저하기로 이름 높아, 실제 공양할 인원만큼만 밥을 지어 낭비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공양과 관련된 것이기에 공양좌목이라 하며, 단순히 목패·명패라 부르기도 하였다.
미감은 곡식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공양좌목을 보고 뒤주에서 1인당 ‘서홉’씩 계산하여 쌀을 내었다. ‘서홉’은 당시 사찰에서 한 끼 분량을 일컫는 말로 쓴 용어이다. 손잡이가 달린 작고 네모난 목기에 쌀을 깎아 담으면 1인분에 해당하여 그 용구를 ‘서홉’, 그렇게 먹는 밥을 ‘서홉밥’이라 불렀다. 실제 ‘3홉’의 계량 단위가 아니라 홉을 일컫는 관용적인 명칭이다. ‘선방의 하루 급식량이 일인당 세 홉’이라는 말이 있어, 하루분이 한 끼분으로 와전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공양좌목은 공양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각자가 내는 식량과도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중후반까지 궁핍하여 주지와 행정직 승려들에게만 봉급에 해당하는 쌀이 지급되었고, 일반 승려들에게는 의식(衣食)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찰이 많았다. 따라서 선방에 방부(榜付)를 들이거나 강원에서 공부하려면 각자 자신이 공양할 쌀을 내야 했는데, 이를 자비량(自費糧)이라 불렀다.
하나의 사례로, 1960년대 서울 백련사에서도 자비량을 내었고, 대방 입구에 공양좌목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명패를 뒤집는 승려 중에는 자신이 낸 쌀이 모자라서 끼니를 굶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공양 때면 산에 올라가서 물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내려왔다고 한다. 이처럼 공양좌목은 한 톨의 쌀도 소중하게 여기는 철저함과 함께 궁핍하던 시절 수행자들의 삶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 집필자 : 구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