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법천사(터) |
|---|---|
| 한자 | 法泉寺趾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법상종, 지광국사 해린, 지광국사탑비, 지광국사현묘탑, 혜소국사 정현 |
| 주소 |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 70 |
| 관련인물 |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 혜소국사(慧炤國師) 정현(鼎賢), 유방선(柳方善) |
고려시대 법상종의 명찰로 지광국사현묘탑과 탑비가 있는 절터
법천사는 통일신라시대 8세기 말에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하였고, 999년(목종 2)경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 984~1070)이 이곳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1031년(덕종 1)에는 혜소국사(慧炤國師) 정현(鼎賢, 972~1054)이 왕명에 따라 이 절에 머물며 법상종 교학을 펼쳤다. 법천사에서 수학한 해린은 이후 왕사, 국사를 지내며 개경의 현화사(玄化寺)를 중심으로 법상종을 이끌다가 1070년(문종 24)에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1085년(선종 2), 지광국사현묘탑과 탑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조선시대 1415년 무렵에는 유학자 유방선(柳方善, 1388~1443)이 원주에 머물며 절을 자주 찾았다. 그는 서거정(徐居正)·한명회(韓明澮)·권람(權擥)·강효문(康孝文) 등을 가르쳤고, 이들이 절에서 남긴 여러 시문(詩文)이 전한다. 절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다섯 차례의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 19동과 석축 및 담장,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각종 기와류 등의 유물을 발견하였다.
현재 절터에는 신라시대 당간지주, 1085년에 건립한 지광국사현묘탑과 탑비(이상 국보) 등이 남아 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우리나라 부도 가운데 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폐사된 이후 방치되다가 1912년 일제강점기에 오사카(大阪)로 반출되기도 하였다. 1915년 다시 반입, 경복궁에 안치하였다.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크게 파손되기도 하였다. 2022년 12월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을 개관하면서 비로소 11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려시대의 부도는 대체로 팔각원당형인데, 지광국사현묘탑은 이 틀을 벗어나 방형으로 조성하였다. 탑 전체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과 독특하고 화려한 장식을 조화롭게 구성한 걸작이다. 지광국사탑비는 전체 높이가 5m, 비신 높이가 2.95m인 대형 비석이다. 비신의 측면에는 화려한 용 문양을 새겼는데, 고려 법상종계 비석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귀부와 이수의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 절의 창건 시에 조성하였고, 현재까지 당간의 받침돌이 잘 남아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