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백률사 |
|---|---|
| 한자 | 栢栗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금동약사여래입상, 대비관음상, 백의관음보살상, 불국사, 이차돈, 이차돈순교비 |
| 주소 | 경북 경주시 산업로 4214-110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이차돈(異次頓), 부례랑(夫禮郎), 안상(安常) |
이차돈의 순교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자추사의 후신
백률사는 신라시대 528년(법흥왕 15)에 창건한 자추사(刺楸寺)로 추정한다. 신라불교의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異次頓, 506~527)을 처형하자, 목에서 흰 피가 1장이나 솟구치고, 머리는 날아가 경주 금강산에 떨어졌다고 하였다. 법흥왕과 이차돈의 이 사전 모의를 계기로 신라불교가 공인될 수 있었다. 이 자리에 그를 추모하는 절을 세워 자추사라고 하였고, 지금의 백률사라고 전한다. 절의 대비관음상(大悲觀音像)에 관한 693년(효소왕 2)의 영험담이 전한다. 당시 화랑도의 국선(國仙) 부례랑(夫禮郎)과 화랑 안상(安常) 등이 말갈족에게 잡혀가고, 경주에서는 현금(玄琴)과 신적(神笛) 두 보물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였다. 부례랑의 부모가 백률사의 관음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자, 탁자 위에 두 보물이 나타나고, 부례랑과 안상 두 사람도 불상 뒤에 와 있었다고 한다. 800년 무렵에는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을 봉안하였다. 이 불상은 높이 177㎝의 통일신라 최대의 금동불이다. 우람한 신체에 온화한 미소, 섬세한 옷주름 등을 갖춘 걸작으로 절의 규모와 사격을 짐작할 수 있다. 818년(헌덕왕 10)에는 ‘이차돈순교비(백률사석당기)’를 조성하였다. 순교비는 이차돈을 추모하는 기념물이다. 육각의 기둥 형태로 높이는 106cm인데 한 면에 목이 날아가고, 흰 젖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조각하였다. 나머지 면에는 칸을 그리고, 이차돈의 순교 과정을 적었다. 조각 모습에서 신라인의 창의적 예술성이 돋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고려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고려 전기에 절에는 불전과 작은 누각이 있었고, 고려 후기에는 서루(西樓)와 백의관음보살상이 있었다. 1375년 무렵에는 서루를 중수하였는데, 이곳에서 바라본 경주 중심가의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이후 절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중건하였다.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1951년 전소되고 말았다. 현재의 가람은 최근에 중건한 모습이다. 대웅전과 범종각, 석등, 마애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내 곳곳에 옛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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