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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한글백련사
한자白蓮寺
유형사찰
키워드구산선문, 대흥사, 보현도량, 만덕사, 무염, 백련사, 성주산문, 아암 혜장, 원묘 요세
주소전남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번지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관련인물무염(無染), 원묘 요세(圓妙了世), 행호(行乎), 효령대군, 아암 혜장(兒庵惠藏), 정약용(丁若鏞)
원묘 요세가 백련사 결사를 수행한 사찰
백련사는 통일신라 문성왕(재위 839∼857) 때 무염(無染, 801~888)이 만덕사(萬德寺)로 창건하였다. 절의 역사는 1800년대 초반에 찬술한 『만덕사지(萬德寺誌)』에 자세히 전한다. 무염은 신라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산조이다. 고려시대 1211년(희종 7) 원묘 요세(圓妙了世, 1163~1245)와 그의 제자 원영(元營)이 20년 동안 중창하였다. 완공을 마치고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여 천태 사상에 입각한 수행 결사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 결사(白蓮社結社)이다. 이후 고려 사회에 수행 결사가 널리 유행하였다. 조선시대 1430년(세종 12)에는 행호(行乎)가 효령대군의 후원으로 중건하였다. 효령대군은 백련사에 머물며 수륙재를 열기도 하였다. 이후 효종(재위 1649∼1659) 때 중건하고, 탑과 사적비를 세웠다. 이후 대흥사 출신의 유명한 강사 아암 혜장(兒庵惠藏, 1772~1811)이 주지를 지냈는데, 당시 절 인근의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교유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약용은 절의 사지 『만덕사지』와 대흥사의 사지 『대둔사지(大芚寺誌)』 편찬에 참여하였다. 가람은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만경루, 만덕산 백련사 사적비, 부도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웅보전은 1762년(영조 38) 월인당 총신 등이 중건하였는데, 당시 중수의 자세한 과정과 참여자를 자세히 적은 「만덕산 백련사 대법당 중수기」가 전한다. 안에는 1710년(숙종 36)에 조성한 아미타·석가·약사의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법당 내부는 삼존불, 16나한 등의 벽화와 조각으로 장엄하였다. 대웅보전과 만덕산 백련사 사적비가 국가 지정 보물이다. 사적비는 높이 447㎝로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螭首)로 구성되어 있다. 귀부는 고려시대, 비신과 이수는 1681년(숙종 7)에 조성하였다.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숲이 아름답다. 1530년(중종 25)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한데, 동백 또한 곁들여서 싱싱한 수목의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하였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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