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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연사(발연수, 발연암)

한글발연사(발연수, 발연암)
한자鉢淵寺(鉢淵藪, 鉢淵庵)
유형사찰
키워드금산사, 삼국유사, 점찰법회, 진표
주소북한 강원도 고산군 외금강면 금강산 미륵봉 아래
관련인물진표(眞表), 형잠(瑩岑), 승찬(勝燦)
통일신라 진표가 창건한 사찰
발연사는 통일신라 진표(眞表, 718~?)가 770년(혜공왕 6)에 창건하였다. 금강산 미륵봉 동쪽의 험준한 계곡 아래 발연이라는 못이 있다. 근처의 바위 모양이 발우(鉢盂)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표는 김제 금산사(金山寺)에서 출가하여 온몸을 바위에 부딪쳐 참회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 수행을 하였다. 진표는 금산사 중창을 마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 발연사를 창건하여 점찰법회(占察法會)를 개설하였다. 7년간을 머무른 뒤에 다시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으로 옮겨 갔다. 진표는 점찰법 수행을 철저히 하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다양하게 겪었다. 어느 때는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 물속으로 인도하였고, 진표는 물속에서 설법하고 물고기 등에게 계를 주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발연사라고 한다. 그는 말년에 아버지를 봉양하며 발연사에서 수행하였다. 『삼국유사』 「관동풍악발연수석기(關東楓岳鉢淵藪石記)」에 자세한 이야기가 전한다. 진표는 절의 동쪽 큰 바위에 올라 죽었다. 제자들은 시신을 그대로 두고 예경하다가 해골이 흩어지지 않도록 흙을 덮어 묻고 무덤으로 삼았다. 이 자리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다가 세월이 오래 지나 말라 죽었고, 다시 나무 한 그루가 났는데 그 뿌리는 하나였다. 지금도 두 나무가 있는데 그 밑에서 진표의 뼈를 발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1657년(효종 8)에 화재로 불타 버린 뒤 1659년에 승찬(勝燦)이 중건하였다. 19세기 말에 이미 폐사되어 있었고, 지금도 절터만 남아 있다. 절의 퇴락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절에 찾아와 구걸하였다. 절에서 홀대하자, 노인은 다음 날 지관(地官)의 행색으로 찾아와 절 앞 계곡에 다리가 있다면 더욱 융성해질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이에 절에서는 다리를 만들어 홍교(虹橋)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자 절 건너편에 있던 고양이 모습의 바위가 이 다리를 통해 절에 왕래하면서 절이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다리를 다시 없앴으나, 그때마다 바위들이 시냇물을 타고 와 다리를 만들었고, 결국 이렇게 폐사되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1199년(고려 신종 2)에 조성한 진표율사장골탑비(眞表律師藏骨塔碑)가 있다. 높이 72cm, 너비 30cm, 두께 24cm이다. 비의 4면에 모두 글이 새겨져 있으나 아래 대부분이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렵다. 비문은 형잠(瑩岑)이 짓고, 글씨는 이자림(李子琳)이 썼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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