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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장사

한글민장사
한자敏藏寺
유형사찰
키워드경주 남산, 삼국유사, 아미타불, 염불, 피리사
주소경북 경주 남산 동쪽 기슭
관련인물민장(敏藏), 보개(寶開), 장춘(長春), 염불사(念佛師), 경덕왕
통일신라 경덕왕 대 민장이 남산 동쪽에 창건한 사찰
민장사는 통일신라시대 745년(경덕왕 4) 이전에 각간(角干) 민장(敏藏)이 자신의 집을 희사하여 창건하였다. 『삼국유사』에 절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가 전한다. 경주 우금리(禺金里)에 사는 가난한 여인 보개(寶開)에게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장춘은 바다의 장사꾼을 따라다녔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서 7일 동안 지극히 기도드렸더니 장춘이 갑자기 돌아왔다. 장춘이 말하기를, “바다에서 회오리바람을 만나 선박이 파손되어 동료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간신히 널판 쪽을 타고 오(吳)나라 해변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나라 사람들이 저를 데려가서 들에서 농사를 짓게 했습니다. 어느 날 고향 신라에서 온 것 같은 이상한 스님이 와서 저를 불쌍히 여기고 동행하였습니다. 도중에 깊은 도랑을 만나자, 스님이 저를 겨드랑이에 끼고 뛰었습니다. 정신이 희미한 가운데 고향 말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려 깨어 보니, 여기 와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경덕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신기한 일이라며 절에 토지와 재물을 바쳤다. 절의 창건주 민장에 관해서는 그가 각간이라는 사실만이 전한다. 각간은 신라시대의 관직 17관등 가운데 최고의 자리이다. 고위 관리를 지낸 후, 은퇴하여 집을 절로 만들었으므로 위치는 경주 시내로 추정된다. 창건 이후 ‘염불 스님’의 진영을 민장사에 봉안한 일이 있었다. 이 염불 스님에 관한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전한다. 남산(南山) 동쪽에 피리촌(避里村)이 있고, 이 마을에 피리사(避里寺)가 있었다. 절에 특이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항상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다. 염불소리가 성안에까지 들렸는데 소리의 높고 낮음이 없이 한결같았다. 신라 사람들이 모두 공경하며 ‘염불 스님’이라 불렀다. 스님이 죽은 후, 흙으로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에 봉안하였다. 본래 살던 피리사는 이름을 고쳐서 염불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염불 스님은 남산의 동쪽 피리사에서 수행하였고, 그의 사후 소상을 민장사에 조성하였으므로 민장사는 피리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추정된다. 즉 민장사는 남산의 동쪽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는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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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탑상편 「민장사」·「영취사」조의 성격
    학술논문 한기문 |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 36 | 경주: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 | 2015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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