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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터)

한글미륵사(터)
한자彌勒寺址
유형사찰
키워드삼국유사, 미륵
주소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7
관련인물백제 무왕(武王), 선화공주, 사택적덕(沙宅積德), 견훤
백제 최대의 사찰인 미륵사의 절터
미륵사는 삼국시대 639년(백제 무왕 40)에 무왕의 왕후가 발원하여 창건하였다. 2009년 석탑 안에서 창건 기록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서동(薯童)설화’에 따라 절이 무왕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이해하였다. 즉 『삼국유사』에서는 무왕 부부가 사자사로 향하던 중 용화산 큰 못가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였고, 이 영험을 기리기 위해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다. 폐사된 시기는 전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17세기에 이미 서탑(西塔)과 당간지주만이 남아 있었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절터의 전체적인 규모를 확인하고, 2만여 점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가람은 동탑과 서탑, 그 중간에 목탑(木塔)이 있었다. 각 탑의 북편에 법당의 성격을 가진 건물이 하나씩 있었다. 이들 탑과 법당을 하나의 구역으로 구분하는 회랑(回廊)이 있어 동쪽은 동원(東院), 서쪽은 서원(西院), 중앙은 중원(中院)이라는 개념의 삼원식(三院式) 가람을 이루었다. 이처럼 미륵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삼탑삼금당으로 구성된 사찰이었다. 2009년에는 석탑의 탑신 1층에서 창건 연대와 창건주를 기록한 탑지(塔誌)와 금제 사리 항아리 등의 유물 500여 점을 발견하였다. 이를 통해 창건을 발원한 왕후는 서동설화에 등장하는 선화공주가 아니라, 당시 좌평(佐平)이었던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현재 미륵사터에는 서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각종 건물지 등이 남아 있다. 서탑은 현존 석탑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오래되었다. 922년에 후백제의 견훤이 탑을 중수하는 등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절이 폐사된 이후 석재가 무너져 거의 절반 정도만 남았다가 1915년 일제가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2001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2018년 세상에 공개되었다. 탑신은 현재 6층까지만 남아 있는데 각 부분을 돌로 짜 맞추어 목조건축의 모습을 지녔다. 최근에는 이 서탑을 모본으로 사라졌던 동탑을 복원하여 탑 안에까지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당간지주는 높이가 각각 3.95m로 지주를 받치던 기단부는 파손되었다. 장식을 최소화하여 간결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미륵사터는 2015년에 왕궁리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해에는 절터의 남서쪽에 국립익산박물관을 건립하여 이곳에서 출토한 진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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