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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

한글무위사
한자無爲寺
유형사찰
키워드대흥사, 백의관음도, 선각 형미,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주소전남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
관련인물선각 형미(先覺逈微), 태감(太甘)
조선 초기의 전각과 벽화를 소장한 사찰
무위사는 신라 원효의 창건설과 도선의 창건설이 전하나 모두 사실성이 떨어진다. 절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고려 초인 946년(정종 원년)에 세운 선각 대사의 비석이다. 선각 형미(先覺逈微, ?~918)는 통일신라 말기에 활동하였으므로 절은 이 이전에 창건되었음은 분명하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이 시대의 3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전한다. 조선시대 1407년(태종 7)에는 천태종에 소속되어 있었다. 1430년(세종 12)에는 극락보전을 짓고, 1476년(성종 7)에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와 백의관음보살벽화를 봉안하였다. 1457년(세조 3) 국왕이 무위사의 잡역을 면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사찰과 승도에게 과중한 부역을 시키지 말라는 국왕의 교지이다. ‘강진 무위사 감역교지 (康津 無爲寺 減役敎旨)’라는 이름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조의 서명인 어압(御押)과 ‘시명지보(施命之寶)’의 어보가 명확하게 남아 있는 귀중한 고문서이다. 이후 1555년(명종 10) 태감(太甘)이 중창한 후 비로소 무위사로 불렀다. 당시 절은 극락보전, 미타전, 영산전, 문수전 등의 23개 전각과 35개에 달하는 암자를 지닌 대찰이었다. 1569년(선조 2)에서 1572년(선조 5)에 걸쳐 절에서는 다양한 불서를 간행하였다. 1569년의 『원인론(原人論)』, 1570년의 『계초심학인문』‧『초발심자경문』‧『발심수행장』‧『제반문』, 1571년의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천지명양수륙잡문』‧『승가일용식시묵언작법』‧『묘법연화경요해』 등이다. 이보다 앞서 1531년(중종 26)에 간행한 『천지명양수륙잡문』 목판(보물)도 남아 있다. 목판의 간행은 많은 인력과 기술, 재원이 있어야 하므로 당시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다. 가람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적광전, 명부전, 미륵전, 천불전, 나한전, 산신각, 보제루, 범종각, 성보박물관, 만행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락보전은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중 몇 안 되는 국보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기둥과 처마 등의 목재를 직선으로 가공하여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잘 갖추었다. 극락보전 내부는 총 29점의 다양한 벽화로 장엄하였다. 삼존불화, 아미타래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를 비롯한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 1점, 입불도 1점 등이다. 대부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후불벽 앞면의 아미타삼존불벽화는 세로 270cm, 가로 210cm의 흙벽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지장보살을 조성한 모습이다. 삼존 위로는 6구의 나한을 구름 속에 묘사하였고, 그 위에 작은 규모의 화불(化佛)을 2구씩 배치하였다. 후불벽 뒷면에는 백의관음보살벽화가 있다. 하얀 옷을 입은 백의관음보살과 넘실대는 파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비구와 그 위의 새 한 마리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1476년에 앞면의 삼존불화와 함께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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