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무량사 |
|---|---|
| 한자 | 無量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김시습, 마곡사, 무염, 만복사저포기, 진묵 |
| 주소 |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무량로 203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김시습(金時習), 설잠(雪岑), 진묵(震默) |
설잠 김시습이 주석했던 사찰
무량사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전기에 창건되었다. 신라의 무염(無染)이 주석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절의 석탑과 석등, 당간지주 등이 모두 고려 전기에 조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그는 조선 전기의 대표적 학자이자 문인으로 『금오신화』와 『만복사저포기』 등을 저술하였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세속을 등지고 출가·유랑하였다. 법명은 설잠(雪岑)이었고, 무량사에서 입적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절개를 지킨 생육신(生六臣)이라고 하였고, 율곡 이이는 ‘백세의 스승’이라고 칭송하였다. 이 무렵 절에서는 여러 경전을 판각, 인쇄하였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권1~4(1488), 『지장보살본원경』(1494),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梵水陸勝會修齋儀軌)』(1498), 『몽산화상육도보설(夢山和尙六道普說)』(1522) 등이다. 다양한 경전을 만들 정도로 사세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진묵(震默, 1562~1623)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 진묵은 남다른 기행과 파격으로 유명하였다. 좌선삼매(坐禪三昧)의 철저한 수행을 하면서도 술에 만취하는 등 스스로 비승비속(非僧非俗)이라고 하였다.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곤궁에 처했을 때, 그의 이러한 무애행(無碍行)은 서민 불교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가람은 극락전, 명부전, 천불전, 영산전, 산신각, 영정각, 우화궁, 범종각, 천왕문, 일주문 등의 전각과 5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락전은 사찰의 전각 중에서는 보기 드문 2층 건물이다. 1층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2층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다. 내부는 1, 2층의 구분이 없이 하나로 통한다. 안에는 1633년에 소조로 조성한 대형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을 봉안하였다. 이보다 앞서 1627년(인조 5)에는 거대한 미륵불 괘불탱(보물)을 조성하는 등 무량사는 외침의 피해를 복구하면서 대찰로 거듭났다. 명부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872년에 중건하였다. 안에는 17세기에 조성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판관 등을 봉안하였다. 5층석탑과 석등, 당간지주는 모두 고려 전기 절을 창건할 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절에 봉안되어 있었던 김시습의 초상(보물)은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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