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만의사 |
|---|---|
| 한자 | 萬儀寺, 萬義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국청사, 법화도량, 소재도량, 용주사, 천태종 |
| 주소 | 경기 화성시 풀무골로 219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혼기(混其), 의선(義璇), 신조(神照), 선화(禪華), 송시열(宋時烈) |
고려시대 천태종의 중심 사찰
만의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시대 1080년(문종 34)에 범종을 조성하였는데, 지금은 수원박물관에 있다. 1284년(충렬왕 10) 무렵 정길(貞吉)과 현묵(玄默) 등이 중건하였다. 1313년(충선왕 5)에 혼기(混其)가 절을 중창하고 법화도량(法華道場)을 개설한 이후 천태종 사찰로 변모하였다. 이어 의선(義璇)이 머물며 절을 법화결사(法華結社)에 소속시켜 천태종 사찰로서 기반을 마련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천태종이 성행하였다. 1315년(충숙왕 2) 개경의 국청사(國淸寺)에서 천태종 승려 3천여 명이 모여 법화 사상을 선양한 일이 있었다. 이후 개경의 여러 사찰이 법화결사에 참여하였고, 만의사도 여기에 동참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웠던 신조(神照)가 주지가 되면서 절의 경제적 기반을 확장하였다. 신조는 이듬해, 7일 동안 소재도량(消災道場)을 개설하였고, 1392년에는 승려 330인을 초청하여 21일 동안 화엄법회(華嚴法會)를 열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사명당 유정의 제자 선화(禪華)가 오랫동안 머물렀다.
1689년(숙종 15)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묘가 만의사로 결정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송시열은 전북 정읍에서 사사(賜死)되었는데, 난데없이 절을 장지(葬地)로 결정한 것이다. 그가 1680년(숙종 6) 이전에 한동안 절에 머물렀던 인연 때문인 듯하다. 조선 후기 억불정책의 극단적인 일면을 보여 준다. 절은 어쩔 수 없이 인근으로 이전하였지만, 불과 60여 년 지나 그의 묘는 충북 괴산으로 이장하였다. 옛 만의사 자리(현 경기도 화성시 신동 산39)에는 원각사가 있다. 1687년(숙종 13)에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범종을 보수하였다. 이 종은 1796년(정조 20) 팔달문으로 옮겨 성문을 여닫을 때 신호용으로 사용하다가 2008년에 수원박물관으로 옮겨 ‘팔달문 동종’이라고 하였다. 제자리 만의사로 옮기고, 이름도 ‘만의사 동종’으로 바꿔야 옳다. 1894년에는 지장전의 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 등을 화성 용주사로 이전하였다.
가람은 대웅전, 지장전, 천불전, 오백나한전(부처님 나라), 보현전, 삼성각, 산신당, 천왕문, 봉서루, 봉향각(종각), 3층석탑, 미륵보살입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