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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한글도피안사
한자到彼岸寺
유형사찰
키워드도선,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주소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
관련인물도선(道詵)
신라 말 도선이 창건하고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한 사찰
도피안사는 통일신라 865년(경문왕 5)에 도선(道詵, 827~898)이 창건하였다. 도선은 절과 석탑이 국토를 지켜 준다는 사탑비보사상(寺塔裨補思想)을 실천하여 전국 곳곳에 절과 탑을 세웠다. 도선은 당시 안양사(安養寺)에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운반 도중 불상이 사라져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가 있었다. 신기한 일이라 여겨 이곳에 불상을 봉안하고, “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간다.”라는 뜻으로 도피안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불상의 등에는 절 인근의 주민 1,500여 명이 조성에 참여하였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조선 후기까지 여러 차례 중건이 이어졌고, 1898년에도 화재를 복구, 중건하였다. 도피안사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애국지사들이 대한독립애국단을 결성하여 전국에 지부를 설립하였다. 당시 강원도 지부의 철원애국단이 절에서 출범하였고, 스님들도 여기에 참여하여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전소되었다. 이 지역은 백마고지가 멀지 않은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당시 스님들은 절을 떠나면서 비로자나불상을 땅 속 깊숙이 묻었다. 이후 전쟁은 멈추었지만 절은 비무장지대(DMZ)에 포함되어 출입이 금지되었다. 이렇게 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1959년 이곳에 주둔한 이명재 사단장이 땅 속에서 불상을 찾아 작은 전각을 짓고 다시 봉안하였다. 절은 1989년까지 군사 구역으로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1990년 이후 꾸준히 전각과 도량을 복원하였다. 가람은 대적광전, 극락보전, 삼성각, 종각, 사천왕문, 해탈문, 설법전, 무설전, 삼층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국보이고, 그 앞의 삼층석탑이 보물이다. 비로자나불좌상은 도선의 창건설에 등장하는 불상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철불 조성이 유행하였는데, 이 불상은 대좌(臺座)까지 철로 만든 희귀한 사례이다.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대좌의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고, 중대는 8각이다. 능숙한 조형 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 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8각의 기단에는 안상(眼象)과 연꽃무늬 조각이 있다.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 3층은 3단씩이다. 전체적으로 9세기 후반의 양식을 지녀 절의 창건 시기에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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