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대왕암 |
|---|---|
| 한자 | 大王岩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문무왕(文武王), 신문왕(神文王), 감은사(感恩寺), 만파식적(萬波息笛), 이견대(利見臺) |
| 주소 |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30-1 |
| 관련인물 | 문무왕(文武王), 지의(智義), 신문왕(神文王) |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
대왕암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이다. 해변에서 200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 있다. 문무왕(재위, 661~681)은 지의(智義) 법사에게 사후에 자신을 불교식으로 화장한 후 동해에 묻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동해의 용으로 환생하여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의지였다. 유언에 따라 화장하고 유골을 동해의 큰 바위 사이에 매장하였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의 침공을 막아 삼국통일을 완수하였다. 그러나 왜구가 동해를 통해 자주 침입하여 노략질을 자행하였고, 왕은 사후에라도 이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서원하였다.
능은 바다 가운데 있는 여러 개의 자연 바위이다. 작은 바위들이 남쪽에 이어져 있는데 마치 능을 수호하는 수호석(守護石)처럼 보인다. 동쪽에서 바닷물이 들어올 때 바위에 부딪쳐 약해진 물결이 안으로 유입된다. 위에서 보면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의 모습이다. 안쪽의 널찍한 공간 중앙에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너른 돌이 있다. 관의 덮개돌처럼 보인다. 이 돌 밑에 유골을 봉안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런데 2001년 KBS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서 바닷물을 막고 이 돌을 조사한 일이 있었다. 조사 결과 돌 밑에는 유골함 등의 구조물을 묻은 공간이나 흔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연 바위의 안쪽을 파내 덮개돌을 놓는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흔적은 뚜렷하다. 결국 대왕암은 문무왕의 유골을 안장하지는 않았지만, 왕이 생전에 중요시했던 동해 수호를 상징하는 추모 시설임은 분명하다.
문무왕은 생전에 불력(佛力)으로 왜구를 막기 위해 동해 가까운 곳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 신문왕이 682년(신문왕 2)에 완성하고 감은사(感恩寺)라고 하였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이다. 감은사 금당터의 지하에는 동해의 용이 된 부왕이 절에 왕래할 수 있도록 굴을 파놓았다. 대왕암 인근에는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 김유신이 준 대나무로 만든 만파식적(萬波息笛) 설화의 현장, 이견대(利見臺)가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