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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사(구미)

한글대둔사
한자大芚寺
유형사찰
키워드사명 유정(四溟惟政), 의승군, 경장(經欌), 사천왕상
주소경북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관련인물왕소군(王昭君), 사명 유정(四溟惟政)
고려 후기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한 사찰
대둔사는 신라시대 446년(눌지왕 30)에 아도 화상(我道和尙)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신라에서 불교를 공인한 때가 527년(법흥왕 14)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전설이다. 고려시대 1231년(고종 18) 몽골족의 침략으로 전소되었다가 충렬왕의 아들 왕소군(王昭君)이 중창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을 봉안하였다. 1606년(선조 39)에는 사명 유정(四溟惟政)이 절에 의승군을 두어 왜란을 방비하였다. 1630년(인조 8)에는 경장(經欌)을 조성하였고, 1740년(영조 16)에는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 삼장보살도 등을 봉안하였다. 1761년(영조 37)에는 아미타불회도를 봉안하였다. 1920년에는 응진전의 석가설법도와 십육나한도, 삼성각의 치성광여래도와 독성도 등을 봉안하였다. 언제인가부터 퇴락하다가 터만 남게 되었고, 현대에 들어 청련암 자리로 이건 중창하였다. 원래의 대둔사 터는 현 위치에서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있다. 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선불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18세기 전각의 특징을 잘 지녀 보물로 지정되었다.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과 단청 문양이 잘 남아 있다. 안에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과 영산회상도, 삼장보살도 등을 봉안하였다. 건칠조각은 흙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삼베를 씌워 옻칠을 하고, 마른 후 다시 옻칠을 반복해서 만드는 정교한 기법이다. 불상의 몸체는 건칠 기법으로 제작하였고 양손은 목재로 조각하였다. 균형 잡힌 신체의 비례와 섬세한 소맷자락 등이 14세기 불상 중에서도 우수한 사례이다. 삼장보살도는 1740년에 영산회상도, 아미타불도 등 여러 불화와 함께 조성하였는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사례이다. 보살의 짜임새 있는 배치와 적록색의 색감 조화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되었다. 절의 또 다른 보물이 경전을 보관하는 경장(經欌)이다. 1630년에 대웅전의 좌우에 봉안하기 위해 2기를 조성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현재는 1기만 남아 있다. 문의 안쪽에는 2구씩의 사천왕상을 선묘(線描)로 묘사하여 경전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불감(佛龕)이나 탑 등에 사천왕상을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만 경장으로서는 유일한 사례이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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