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다솔사 |
|---|---|
| 한자 | 多率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연기 조사(緣起祖師), 한용운, 만당(卍黨), 최범술(崔凡述) |
| 주소 | 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연기 조사(緣起祖師), 의상(義相), 한용운(韓龍雲), 최범술(崔凡述), 김법린(金法麟), 김동리(金東里) |
주권상실기 독립운동결사 만당(卍黨)의 본거지
다솔사는 신라시대 503년(지증왕 4)에 연기 조사(緣起祖師)가 영악사(靈嶽寺)로 창건하였다. 636년(선덕여왕 5)에 중건하면서 다솔사라고 하였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相)이 영봉사(靈鳳寺)로 바꿨고, 신라 말 도선(道詵)이 중건하면서 다시 다솔사라고 하였다. 절이 위치한 봉명산의 형세가 대장군처럼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多率]’이라는 의미이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까지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조선 후기 1686년(숙종 12)에 중건하였고, 1758년(영조 34)에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914년에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이듬해에 복원하였다. 1917년에는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주석하였다. 한용운을 따르는 백성욱·김법린·김상호·이용조 등은 만당(卍黨)을 결성하고 다양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의 강압이 날로 심해졌고, 이를 피해 한용운은 서울에서 다솔사로 내려왔다. 다솔사는 이제 만당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9년 한용운의 회갑연을 절에서 열었다. 이때 기념으로 심은 편백나무가 지금도 푸르다. 1930년대 이후 절에서는 최범술(崔凡述, 1904~1979), 김법린(金法麟, 1899~1964), 김범부(金凡夫, 1897~1966) 등의 독립운동가, 정치인들이 참여하여 각종 법회와 민족 계몽 강연회 등을 개최하였다. 1960년에는 소설가 김동리(金東里, 1913~1995)가 야학교사로 절에 머물며 『등신불(等身佛)』을 집필하였다. 해인사 주지와 제헌의원을 지냈던 최범술이 이 절에서 원효 연구와 다도 보급에 힘썼다. 절 주변에서 재배하는 녹차, 반야로(般若露) 차가 유명하다.
가람은 적멸보궁, 대양루, 극락전, 응진전, 대웅전, 나한전, 천왕전, 안심료, 사리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적멸보궁은 본래 대웅전이었는데, 1978년 응진전의 아미타여래불상에서 불사리 108과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적멸보궁으로 개축하였다. 안에는 붓다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인 와불상을 봉안하였다. 성보문화재로는 극락전과 응진전, 대양루가 경남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괘불도는 국가등록문화재이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