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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

한글내원사
한자內院寺
유형사찰
키워드원효(元曉), 척판암(擲板庵), 혜월 혜명(慧月慧明), 정수옥(鄭守玉)
주소경남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
관련인물원효(元曉), 혜월 혜명(慧月慧明), 정수옥(鄭守玉)
원효의 창건설화가 깃든 비구니 수행 사찰
내원사는 원효(元曉, 617~686)가 창건한 내원암(內院庵)에서 유래한다. 987년 송나라에서 완성한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원효의 창건설화가 전한다. 부산 기장의 척판암(擲板庵)에서 수행하던 원효는 어느 날 중국 장안의 운제사(雲際寺) 대웅전 대들보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위급한 사태를 전하기 위해 소반에 “해동의 원효가 소반을 던져 대중을 구제한다(海東元曉擲盤救衆).’라는 글귀를 적어 힘껏 던졌다. 이 소반이 운제사에 이르렀고, 절의 대중들이 이를 보고 모두 피신, 무사하게 되었다. 목숨을 건진 1천여 명의 중국 스님들이 마침내 원효를 찾아 신라에 들어왔다. 원효는 대둔사(大芚寺)를 창건하고 상·중·하내원암을 비롯하여 89개 암자를 세워 이들을 모두 거두었다. 이들은 원효의 가르침을 받아 모두 성인(聖人)이 되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천성산(千聖山)으로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때 창건한 하내원암이 내원암의 전신이다. 조선 중기에는 암자 대부분이 사라졌고 하내원암만 남아 있었다. 1845년(헌종 11)에 용운(龍雲)이, 1876년에는 해령(海嶺)이 각각 중수하였다. 1898년에는 유성(有性)이 수선결사(修禪結社)를 창설하고 비로소 내원사로 개칭하였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었는데, 1955년 비구니 정수옥(鄭守玉)이 복원을 시작하여 1959년까지 불사를 완료하여 비구니 수행도량으로 거듭나게 하였다. 근대의 고승 혜월 혜명(慧月慧明, 1861~1937)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주석하였다. 혜명은 무소유 정신과 천진한 성품으로 여러 일화를 남겼다. 승려의 노동은 수행 중의 하나라며 내원사의 산 2천여 평을 개간하기도 하였다. 가람은 선나원, 정려헌, 죽림원, 원화당, 간월당, 심우당, 산령각, 일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구니 수행도량답게 수행처인 선당(禪堂)이 중심을 이룬다. 산내 암자로는 금강암, 금봉암, 노전암, 비로암, 성불암, 안적암, 익성암, 조계암 등이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고려시대 1091년(선종 8)에 조성한 청동북, 조선 후기의 법기보살좌상, 1857년(철종 8)의 취운암 아미타삼존탱 등이 있다. 청동북은 금인사(金仁寺)에 봉안했던 것으로 고려 청동북 중에서도 우수한 사례로서 보물로 지정되었다.
· 집필자 : 한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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