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김룡사 |
|---|---|
| 한자 | 金龍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혜총(慧聰), 사인비구(思印比丘), 권상로, 퇴옹 성철, 『경북오본산고금기요(慶北五本山古今記要)』 |
| 주소 |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용길 372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운달(雲達), 혜총(慧聰), 사인비구(思印比丘), 권상로, 서암 홍근, 퇴옹 성철 |
경북의 5대 명찰 중의 하나로 수행과 강학(講學)의 도량
김룡사는 588년(진평왕 10)에 운달(雲達) 조사가 운봉사(雲峰寺)로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고 조선 중기부터 기록이 등장한다. 1624년(인조 2) 혜총(慧聰)이 선당과 승당을 짓고, 이듬해 법당과 향로전 등을 세웠다. 이후 절을 ‘혜총도량’이라 불렀는데 이로 보아 이때가 절의 실질적인 창건이라 할 만하다. 1649년(인조 27)에는 화마로 사라진 법당을 재건하고 불상을 봉안하는 등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갑계를 비롯한 여러 사찰계가 활동하면서, 절의 신앙적·경제적 기반을 이끌어 갔다. 절 이름 운봉사는 1800년대 초기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이 무렵부터 김룡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근대 들어 절은 민족과 사회를 위한 노력을 다양하게 펼쳤다. 일제에 항거하는 의병의 주둔지 역할을 하다가 식량과 재물이 압수되는 고난을 겪었다. 1907년에는 절에서 근대교육을 시행하는 경흥학교를 설립하였다. 승려뿐만 아니라 재가 청년까지 차별없이 교육하였다. 이들은 1919년 만세운동을 펼치는 등 민족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1937년 절은 경북의 5대 본산(동화사·은해사·고운사·기림사)으로서 역사와 문화를 정립하는 『경북오본산고금기요(慶北五本山古今記要)』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본사의 지위는 직지사로 옮겨 갔으나 권상로(1879~1965)와 서암 홍근(1914~2003), 퇴옹 성철(1912~1993) 등의 고승이 주석한 명찰이었다.
가람은 대웅전, 극락전, 응진전, 금륜전, 명부전, 범종각 등의 전각과 상선원, 향하당, 해운료, 감로당 등의 승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내에는 대성암, 양진암, 화장암, 금선대 등의 암자가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당대의 유명한 장인 사인비구(思印比丘)가 1670년(현종 11)에 조성한 동종과 1703년(숙종 29)의 영산회괘불도가 보물이다. 대웅전과 영산회상도, 명부전의 지장삼존상과 현왕도, 응진전의 십육나한좌상 등이 경북 유형문화재이다. 최근에는 『김룡사 사료수집』과 『대본산 김룡사 본말사 연혁 원고』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