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기림사 |
|---|---|
| 한자 | 祗林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기원정사, 복장유물, 건칠보살상, 불국사 |
| 주소 |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437-17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광유, 원효, 각유, 인성 |
12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비로자나불상 복장전적 71책을 봉안한 사찰
기림사는 인도에서 온 광유(光有) 선사가 643년(선덕여왕 12)에 임정사(林井寺)를 창건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원효 대사(617~686)가 중창하면서 부처님의 설법처였던 기원정사(祇園精舍)라는 뜻의 기림사로 바꿨다고 한다. 682년(신문왕 2)에는 국왕이 감은사 앞바다에 행차하여 그 유명한 만파식적을 얻은 후, 기림사 서쪽 계곡에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하대에는 절에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의 역사는 비로자나불상에서 발견한 복장전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모두 54건 71책에 달하는 목판본과 사경인데 12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6세기 동안의 유물이다. 고려의 전적은 32종이다. 1258년(고종 45)에는 각유(覺猷) 대선사가 절의 주지로 있었다. 대선사는 고려시대 선종의 가장 높은 승계(僧階)였으므로 당시 절은 선종사찰이었고, 최고 지위의 대선사가 주석하였던 높은 사격을 지녔다.
조선시대 역사는 각종 문헌기록과 불상, 불화 등의 유물자료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가장 앞선 유물은 1501년(연산군 7)의 묵서가 있는 건칠보살좌상이다. 임진왜란을 맞아 절의 인성(印性) 스님이 279명의 의승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1594년(선조 27)에는 의병장 이눌(李訥, 1569~1599)이 절에 주둔하며 왜군과 맞섰다. 여기서 유래하여 누각의 이름을 ‘남쪽(일본)을 진압하는 누각’이라는 뜻에서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다.
이후 17~19세기의 잦은 중수 기록이 전한다. 이 시기 절에는 갑계와 염불계 등의 각종 사찰계가 활동하면서 절의 신앙적·경제적 기반을 조성하였다. 1911년 절은 30본산의 하나로서 인근의 17개 사암을 관할하는 본산이 되었다. 이 결과 기림사보다 역사와 전통, 규모 등이 앞선 불국사가 말사가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1937년부터 본산을 불국사로 옮기기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하면서 본산의 지위는 불국사가 맡았고, 기림사는 말사로 편입되었다. 가람은 현재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약사전, 관음전, 응진전, 무량수전, 삼천불전, 명부전, 삼성각, 진남루, 삼층석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