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귀신사 |
|---|---|
| 한자 | 歸信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의상, 화엄십찰, 김시습 |
| 주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의상(義相), 원명 징엄(圓明澄儼), 현오 종린(玄悟宗璘) |
의상이 창건한 신라 화엄십찰 중의 하나
절은 676년(신라 문무왕 16)에 의상(義相, 625~702)이 창건하였다. 당시의 이름은 국신사(國信寺)였는데 이후 귀신사(歸信寺), 구순사(狗脣寺) 등으로 변화하였다. 신라 때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가 되어 호남 지역의 화엄성지로 발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 징엄(圓明澄儼, 1090~1141)이 절을 중창하고 구순사로 바꿨다. 입적 후 절에 비석을 세웠는데, 『삼국사기』 편찬의 책임자였던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비문을 썼다. 고려 중기에는 현오 종린(玄悟宗璘, 1127~1179)이 주석하였다. 그는 인종의 아들로 원명 징엄의 제자였다. 이처럼 절은 고려시대 왕족 출신의 고승들이 머물렀으므로 높은 사격을 지녔다. 고려 말 1376년(우왕 2) 왜병이 침입하여 절에 주둔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절에 진을 친 300여 명의 왜병을 모두 격퇴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절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조선 전기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절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폐사되어 있었다. 그 후 중건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었고, 17세기 중엽 다시 중건하였다. 18세기 중엽까지 대찰의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1873년(고종 10) 춘봉(春峰)이 중건하고 김보화, 김만송 등이 중수를 거듭하였다. 조종화(趙鍾和), 정응회(鄭應悔), 김시현(金時鉉), 송상신(宋相信) 등이 주지를 맡으며 법등을 이어 오다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현대 들어 추담(秋潭), 유금성, 혜견(慧見), 용타(龍陀), 범현(梵玄), 무여(茂如) 등이 주지를 맡아 사격을 회복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가람은 대적광전과 명부전, 영산전 그리고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적광전은 17세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안에는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을 봉안하였다. 석조물로는 삼층석탑과 석수(石獸), 부도, 그리고 청도리삼층석탑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백제 계통의 양식을 계승하여 14세기에 조성하였다. 석수는 동물의 등에 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인데 풍수지리에 따라 땅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웠다고 전한다. 부도는 마을 들판 가운데 있다.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위치로 보아,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까지 절의 영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도리삼층석탑은 귀신사 서쪽의 길가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고려시대에 조성하였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