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귀법사 |
|---|---|
| 한자 | 歸法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균여, 반승, 백고좌회, 『신편제종교장총록』, 『원종문류』 |
| 주소 |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영남면 |
| 관련인물 | 균여(均如), 최충(崔冲), 낙진(樂眞), 현응(玄應), 종린(宗璘) |
고려 광종이 균여(均如)를 위해 창건한 국가의 사찰
귀법사는 고려 광종이 963년(광종 14)에 균여(均如, 923~973)를 위해 창건하였다. 그러므로 균여가 오랫동안 주지를 지냈고, 이곳에서 화엄교학을 설파하였다. 국왕이 창건한 사찰이었으므로 국가의 주요 법회를 이곳에서 자주 개최하였다. 고려시대 후학 교육에 큰 업적을 남긴 최충(崔冲, 984~1068)이 이 절에서 최초로 하과(夏課)를 개최하였다. 하과는 매년 5월과 6월의 50일 동안 사찰에서 문도(門徒)들을 합숙, 교육하는 사학(私學)의 과거시험 준비 특강이었다. 이 절에서 하과를 처음 시작한 이래 중앙의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는 물론 지방의 사학에까지 널리 확산되었다.
창건 이후 목종·선종·의종 등 왕들의 행차가 자주 있었다. 1085년(선종 2) 선종이 행차해 반승(飯僧)을 베풀었고, 1087년에는 절의 대장경 봉안 법회에 참석하였다. 의종은 1161년(의종 15) 한 달을 넘게 절에 머물렀고, 1166년에는 백고좌회(百高座會)를 열기도 하였다. 귀법사는 국가의 사찰이었으므로 고려의 유명한 고승과 왕족 출신의 승려들이 머물렀다. 대표적인 인물이 원경 왕사(元景王師) 낙진(樂眞, ?~1114)이다. 대각국사 의천(義天)을 따라 송나라 항주(杭州)의 혜인원(惠因院)에서 진수(晉水)를 만나 법을 깨쳤다. 낙진은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원종문류(圓宗文類)』 편찬 등에 참여하였다. 70세로 귀법사에서 입적하였고, 1125년(인종 3) 합천 반야사(般若寺)에 그의 비, 원경왕사비를 세웠다. 다음은 현응(玄應, ?~1139)으로 제15대 국왕인 숙종의 아들이다. 당시에는 궁인이 임금의 아들을 낳으면 대개 출가시켰다. 원명 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 1090~1141)이 이복형제이다. 1179년(명종 9)에는 현오 국사(玄悟國師) 종린(宗璘, 1127~1179)이 절에서 입적하였다. 그 역시 인종의 아들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의 승도 2천여 명이 무신정권에 반발하며 궐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무신들의 반격에 실패로 그쳤고, 거사에 참여한 귀법사 등의 7개 사찰은 파괴되고 말았다.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글에 절은 이미 석주만 남았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까지 석조 당간지주와 대형 초석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사정은 알 수 없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