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굴산사 |
|---|---|
| 한자 | 崛山寺(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구산선문, 범일 국사, 보조 지눌, 혜소(慧炤, 탄연(坦然) |
| 주소 | 강원 강릉시 구정면 오독떼기길 41-19 |
| 관련인물 | 범일(梵日), 행적(行寂), 혜소(慧炤) |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근본 사찰
굴산사는 신라 하대인 851년(문성왕 13)에 범일 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주석하며 역사에 등장한다. 범일은 당에 유학하여 16년간(831~847) 중국 선종의 수행가풍을 체득하였다. 귀국 후 강원도 명주도독의 청으로 굴산사에 주석하며 40여 년간 교화에 전념하였다. 신라의 여러 국왕이 그를 국사로 추대하고 경주로 초빙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많은 제자들이 모여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闍崛山門)을 이루었다.
범일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에서 주신(主神), ‘대관령국사서낭[大關嶺國師城隍]’으로 추앙되기도 한다. 국사의 대표적인 제자로는 행적(行寂)·개청(開淸) 등 10대 제자가 있었다. 이들의 선법이 고려까지 이어져 혜소(慧炤)를 비롯하여 탄연(坦然)과 지인(之印) 등이 산문을 진흥시켰다. 한때는 거주승이 200명이 넘어 절에서 쌀 씻은 뜨물이 동해까지 흘렀다고 할 정도였다. 고려 중기에 선을 크게 중흥시킨 보조 지눌(普照知訥)도 사굴산파 출신이다.
절은 조선시대 이전에 폐사된 듯하다. 현재 절터에는 당간지주와 부도탑, 3기의 석불 등이 남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절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규모인데 법당과 승방, 회랑과 탑 등의 자리가 확인되었다. 통일신라의 당간지주는 높이 5.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고, 깃대를 고정했던 구멍이 위, 아래 두 개씩이다. 단순, 소박하나 거대한 규모에서 굴산사의 번성을 짐작하게 한다. 부도탑은 범일을 모신 탑으로 추정하는데 전체적으로 8각으로 조성하였다. 사리를 봉안하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받침돌, 위로는 지붕돌과 꼭대기장식이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개의 기둥으로 구획하고 각 면에 천인(天人)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겼다. 이 부도탑의 기단석 아래 지하에는 석실이 있고 오백나한을 안치한 흔적이 있다. 3기의 석불은 모두 한 손이 다른 손의 검지를 감싸고 있는 비로자나불이다. 2기는 1968년에 건립한 법당에 봉안하였고, 1기는 보호각에 안치하였다. 머리에 큰 관모를 쓴 모습이나 심하게 파손되었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