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구암사 |
|---|---|
| 한자 | 龜巖寺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선문논쟁, 백파 긍선, 설두 유형, 박한영, 월인석보 |
| 주소 |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 |
| 종단정보 |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 |
| 관련인물 | 설파 상언(雪坡尙彦), 백파 긍선(白坡亘璇), 설두 유형(雪竇有炯), 추사 김정희,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
조선 후기 화엄교학의 성행을 주도한 사찰
구암사는 백제시대 623년(무왕 24)에 숭제(崇濟)가 창건하였는데 이때의 절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시대 1392년(태조 1)에 구곡 각운(龜谷覺雲)이 구암폭포 부근에 중창하면서 구암사라고 하였다.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이후 지금의 자리에 법등을 이었다. 조선 후기 화엄학에 정통하였던 설파 상언(雪坡尙彦, 1707~1791)이 머물며 화엄 사상을 강의하였다. 1800년대 초기에는 백파 긍선(白坡亘璇, 1767~1852)이 이곳에 선강법회(禪講法會)를 개설하여 선풍을 일으켰다. 백파와 초의 의순(草衣意恂, 1786~1866) 사이에서 촉발된 선문논쟁(禪門論諍)은 한국불교의 유명한 논쟁이었다. 20세기 초까지 추사 김정희·설두 유형(雪竇有炯, 1824~1889)·우담 홍기(優曇洪基, 1822~1880)·축원 진하(竺源震河, 1861~1926) 등을 거치면서 약 100년 동안 반론과 재반론을 거듭하였는데 절은 이러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추사가 직접 짓고 쓴 백파 대사의 비, 「화엄종주백파대율사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白坡大律師大機大用之碑)」는 현재 백파의 출가본사 고창 선운사로 옮겨 갔다. 백파의 제자 설두 유형이 절을 잇고 다시 설유 처명(雪乳處明, 1858~1903),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 1870~1948)으로 이어지며 절은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이르는 교학의 산실이 되었다. 1940년 일헌(一軒)이 절을 중수하였고, 박한영은 이를 기념하여 「중수구암사기」를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로 변하였다가 1957년과 1973년에 전각을 중수하였다. 1997년에는 삼성각을 신축하였다.
가람은 대웅전과 삼성각, 화엄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설파, 정관(正觀, ?~1813), 백파, 설두, 설유, 일헌, 중산, 운기 등의 부도가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월인석보』 권15가 있다. 『월인석보』는 1459년(세조 5) 세조가 세종이 찬한 『월인천강지곡』에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을 덧붙여 한글로 편찬한 책이다. 그동안 완전한 상태로 전하는 판본이 없었는데 비록 앞뒤의 표지는 없으나 본문이 다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였다. 또한 편찬한 그해에 간행한 초간초쇄본(初刊初刷本)이라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