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고달사(터) |
|---|---|
| 한자 | 高達寺(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현욱(玄昱), 심희(審希), 찬유(璨幽), 원종대사탑, 쌍사자석등 |
| 주소 | 경기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20-3 |
| 관련인물 | 현욱(玄昱), 심희(審希), 찬유(璨幽) |
신라 하대~고려 전기 고승의 국보 부도탑이 있는 절터
고달사는 통일신라 시대인 764년(경덕왕 23)에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고 현욱(玄昱, 788~869)이 머물기 시작한 840년(문성왕 2) 이후의 역사가 전한다. 현욱은 20여 년간 중국에서 불법을 익힌 후 837년(희강왕 2)에 돌아와 오랫동안 고달사에서 수행하였다. 세간에서는 절의 뒷산 이름을 따 혜목산 화상(慧目山和尙)으로 불렀고, 경문왕은 원감화상(圓鑑和尙)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훗날 그의 제자 심희(審希, 855~923)가 창원 봉림사(鳳林寺)에서 선풍을 떨쳐 봉림산문을 일궜다. 고려 전기까지 선종의 중심 사찰이었고, 이후 1097년(숙종 2) 의천이 천태종을 창종한 이래 천태종의 주요 사찰로 성장하였다.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지금까지 절터만 남아 있다.
현재의 절터 1만 8천여 평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 법당과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고 남아 있는 유물은 모두 석조물들이다. 이 가운데 원종대사탑과 탑비, 그리고 현욱 대사(추정) 부도탑 등의 국보와 석조대좌, 쌍사자석등(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원종대사 찬유(璨幽, 869~958)는 광종의 왕사, 국사였다. 심희의 제자로 고달사에서 선문을 크게 일으켰다. 975년(광종 26)에 시호를 원종대사(元宗大師), 탑호를 혜진(慧眞)이라 하여 부도탑과 탑비를 세웠다. 부도탑은 3단의 기단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원형을 잘 지니고 있다. 기단의 연꽃과 거북이, 용, 구름 등이 정교하고, 탑신의 사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는 생생한 모습이다. 탑비는 비신과 귀부, 이수로 이루어졌는데 비신은 8조각으로 부서진 채 여주박물관에 있다. 귀부와 이수의 힘차고 강건한 느낌의 용, 거북 조각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이다. 여기에 최근에 비신을 복원하여 다시 세웠다. 현욱 대사 부도탑은 국보 4호로 지정될 만큼 일찍부터 뛰어난 불교적·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석조대좌는 10세기 양식을 지닌 큰 규모로 아름다운 연꽃무늬까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쌍사자석등은 웅크리고 앉은 사자가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로 역시 10세기에 조성하였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