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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한글건봉사
한자乾鳳寺
유형사찰
키워드아도 화상, 사명 유정, 한용운,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
주소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
관련인물아도 화상, 도선, 나옹 화상, 사명 유정, 한용운
한국 최초의 만일염불회 개설 사찰
건봉사는 신라시대인 520년(법흥왕 7)에 아도(阿道) 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한용운이 찬술한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1928년)에 자세한 역사가 전한다. 758년(경덕왕 17)에 발징(發徵) 화상이 원각사를 중건하고 만일염불회를 창설하였다. 우리나라 만일염불회의 효시이다. 1921년까지 모두 여섯 차례의 만일회가 결성되었다. 시대를 달리하며 오랫동안 지속한 만일회는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건봉사의 높은 사격을 보여 준다. 고려 초에 도선(道詵)이 중수하면서 서봉사(西鳳寺)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 화상이 서봉사를 중수하고 건봉사로 이름을 바꿨다. 1466년(세조 11) 세조가 절에 행차하여 원당으로 삼고 어실각(御室閣)을 짓도록 하였다. 절은 임진왜란 당시 의승군을 처음 일으킨 곳으로 유명하다.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은 1592년 6월 유점사와 고성에서 왜군들을 설복, 퇴각시켰다. 이어 건봉사에서 100여 명의 승군을 모집하여 전선으로 향했다. 절은 조선 후기에도 왕실의 원당으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하였다. 1912년 절은 일제의 사찰령에 의해 본산이 되었다. 인근의 고성, 인제, 양양, 홍천, 양구 등 28개 말사의 본산이었다. 이 무렵 절은 새로운 불교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3년 평양포교소를 시작으로 1936년 양양 능인포교당까지 가까운 간성에서 멀리 서울과 마산 등에 10개소의 포교소를 운영하였다. 또한 산중에 봉림학교와 봉명학교를 설립하여 근대식 교육을 도입하였다. 한국전쟁의 비운을 맞아 1951년 5월 10일 유엔군의 전투기 폭격으로 전각이 몰려 있던 대웅전 지역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2년 3월까지 대웅전이 그대로 남아 국군의 주둔지로 사용했다는 증언도 있다. 휴전 이후에도 절 주위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서 1989년까지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1990년대 이후 꾸준히 복원하여 현재 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만일염불원, 보안원, 적멸보궁, 명부전, 봉서루, 동지전, 진영각, 범종각, 산신각, 사명당의승병기념관, 불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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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김광식·한상길 | 서울: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 | 2020 상세정보
  •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과 한용운의 乾鳳寺 사적
    학술논문 한동민 | 정토학연구 | 14 | 서울: 한국정토학회. | 201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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