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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사

한글개태사
한자開泰寺
유형사찰
키워드태조 왕건, 석조여래삼존입상
주소충남 논산시 연산면 계백로 2614-11
종단정보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관련인물태조 왕건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물리친 기념으로 창건한 사찰
개태사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이 936년(태조 19)에 창건하였다. 태조는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절을 짓고, “태평성대를 연다.”라는 의미에서 개태사라고 하였다. 태조는 화엄법회를 개설하면서 친히 「개태사화엄법회소」 소문(疏文)을 지었다. 후백제의 신검(神劍, 재위 935~936)이 마성(馬城)에 주둔하고 있던 왕건에게 찾아와 항복을 청하였는데 이곳이 바로 개태사 지역이다. 태조는 후백제로부터 최후의 항복을 받은 이곳에 절을 창건하여 고려의 영토라는 의미를 강조한 듯하다. 이후 절에 태조의 초상을 봉안하는 등 국가 사찰로서의 사격을 지녔을 것이지만,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후기인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수도를 강화로 옮기자는 여론이 일어나자 공민왕이 개태사에 신하를 보내 천도 여부를 점치는 일이 있었다. 왜구의 침탈이 극심해지면서 급격히 쇠락하였다. 조선 초기인 1428년(세종 10)에 법당을 남쪽 300m 지점으로 옮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법등이 끊어졌다. 1930년, 오랫동안 석불과 석탑만이 남아 있던 곳에 김광영(金光榮)이 법당을 짓고 도광사(道光寺)라고 이름 붙였다. 다시 태광사(泰光寺)로 고쳤고, 석불과 석탑 등을 이전하면서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 가람은 극락대보전, 대웅전, 신종루, 어진전,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보문화재로는 고려시대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 철확(鐵鑊)과 석조(石槽) 등이 있다. 오층석탑은 원래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옮겨 세웠다. 기단이 없이 5층의 탑신만이 남아 있으나 소박하고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고려의 양식이다.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의 보살상으로 고려시대의 투박하지만 단정한 모습을 지녔다. 철확은 철로 만든 대형 솥으로 직경 289cm, 둘레 910cm, 높이 96㎝이다. 석조와 함께 절에 대규모의 승도가 머물렀음을 알게 해 준다. 2016년 절터 발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양의 기와와 막새, 소조불 파편 등이 출토되었다. 소조불의 머리 크기로 보아 등신대 이상의 규모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반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있고, 석조불좌상 1구는 상방산의 한 암자에 있다.
· 집필자 : 한상길

관련자료

  • 개태사지
    도서 공주대 박물관 | 2002 상세정보
  • 개태사 태평성대 고려를 열다 특별전 도록.
    도서 국립부여박물관 | 2018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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