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감은사(터) |
|---|---|
| 한자 | 感恩寺(址) |
| 유형 | 사찰 |
| 키워드 | 문무왕, 신문왕, 대왕암(문무대왕릉) |
| 주소 |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 |
| 관련인물 | 문무왕, 신문왕 |
문무왕과 신문왕이 창건한 신라의 호국사찰 터
감은사는 통일신라 때인 682년(신문왕 2)에 신문왕이 창건하였다. 부처님의 가호로 왜구의 침탈을 막고자 한 문무왕의 발원으로 처음 절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사후에 바다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킬 것이라며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 신문왕은 부왕의 뜻을 따라 대왕암에 모시고, 절을 완성하였다.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라고 하였다. 호국의 원찰이었으므로 대규모의 전각 등을 갖추고 높은 사격을 지녔을 것이나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현재는 동·서의 두 탑만이 남아 있다. 발굴조사 결과 강당·금당·중문 등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다.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이 이곳을 통해 절에 왕래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두 탑은 높이 13.4m로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크다.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방형(方形)의 옥개석을 올린 삼층석탑이다. 각 부분을 하나의 통돌이 아니라 여러 개의 석재로 조립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강건함과 기백이 느껴지는, 우리 석탑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1959년 탑을 보수하다가 서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와 사리외함, 수정 사리병을 발견하였다. 사리외함은 높이 약 31㎝로 네 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내부의 금동 사리기는 높이 16.5㎝로 목조 건축물 모습이다. 정사각형의 기단과 사리병을 봉안한 몸체, 그리고 수정 보주로 이루어졌다. 몸체에 안상형(眼象形)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존상을 배치하였다. 주위의 난간에는 주악상이, 중심에는 화염보주가 있다.
1996년에는 동탑에서 사리외함, 사리기, 사리병 등을 발견하였다. 외함의 네 면에는 사천왕상이 있고, 그 주변에는 구름무늬와 귀신의 얼굴 모양을 새긴 고리가 있다. 사리를 넣은 내함은 기단부, 몸체, 천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의 네 모서리에는 사자가 있고, 기단면에는 안상 모양의 장식을 투조하였다. 투조의 내부에는 돋을새김한 신장상과 공양보살상이 있다. 몸체의 중앙에는 사리를 넣은 복발형 용기를 중심으로 사천왕과 스님상을 각 4구씩 따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사리병은 높이 3.65cm의 수정병이다. 금알갱이로 장식한 뚜껑과 받침, 그리고 원판의 수정받침, 금동 투조받침 등이 높은 품격을 나타낸다.
· 집필자 : 한상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