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백성욱 |
|---|---|
| 한자 | 白性郁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1897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897년 |
| 입적 | 1981년 9월 16일 |
불교 근대화에 이바지한 수행자
20세기에 활동하며 독일 유학 후 귀국하여 불교 근대화에 이바지한 수행자이다.
1897년 서울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1901년 곤동학교(壼洞學校)에 입학했다. 1910년 서울 봉국사(奉國寺)에서 하옹(荷翁)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1919년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을 졸업했다.
3.1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 상하이로 갔다가 프랑스 파리 보배(Beauvais)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 1922년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Julius-Maximilians-Universität Würzburg) 철학과에 입학해 고대 그리스어와 독일 신화사(神話史) 등을 연구했다. 1925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 불교형이상학)’을 주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불교 잡지 등에 논문을 발표했으며, 1928년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했고, 금강산 안양암에서 수행하며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연찬했다. 그는 “누구나 『대방광불화엄경』을 일심으로 독송하면 모든 재난은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한다.”라고 설했다. 1930년 금강산 지장암으로 옮겨 대중과 함께 정진했지만, 일본 경찰의 압력으로 8년 만에 그만두었다. 1939년부터 서울 돈암동 자택에서 수행했다.
1945년 광복 후 중앙공작대(中央工作隊)를 지도했다. 제4대 내무부장관(1950),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1951)을 지내고, 1952년 제2대 대통령선거와 1956년 제3대 대통령선거에 부통령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했다. 동국대 총장(1953~1961), 동국학원 이사장(1954~1961), 대광유지(大光油脂) 사장(1955), 경기학원 이사장, 고려대장경보존동지회장을 지냈다.
1962년부터 경기도 부천에서 백성농장을 경영하며 수행하다 1981년 9월 16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책에서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제자들이 금강경독송회(金剛經讀誦會)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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