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박봉석 |
|---|---|
| 한자 | 朴奉石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1905 |
| 시대 | 근현대 |
| 출생 | 1905년 8월 22일 |
| 입적 | 미상 |
| 호 | 용재(榕齋) |
| 주요주석처 | 고양 흥국사 |
한국 도서관 기반을 구축한 인물
한국 도서관의 기반을 구축하여 ‘한국 도서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1905년 8월 22일 경남 밀양군 밀양면 삼문리 342번지에서 부친 박근실(朴根實)과 모친 김분이(金分伊)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박영수(朴泳洙). 어려서 표충사 주지 김덕월(金德月) 스님에게 출가해 법명인 봉석(奉石)을 호적에 올렸다. 호는 용재(榕齋), 필명은 재약산인(載藥山人).
밀양공립보통학교(1916~1920)를 다니고, 표충사 스님에게 3년간 글을 배운 후 상경하여 1922년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1927년 졸업했다. 밀양 표충보통학교 교원(1927년 4월~1928년 3월)을 지내고, 중앙불교전문학교(지금의 동국대)에 진학해 1931년 졸업했다.
중앙불전 동기들은 『일광(一光)』 제3호에서 박봉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재약산(載藥山) 죽림(竹林) 속에 범종(梵鍾) 소리 어리어라, 표충사(表忠寺) 앞날 어른 뜰에 완연(完然) 노니는 듯, 박봉석(朴奉石) 그리운 소식(消息) 예서 물어 보오리.”
1931년 조선총독부 도서관에 입사하고, 1939년 3월에는 일본 문부성 공립도서관 사서 검정시험에 조선인으로는 두 번째로 합격했다, 1945년 8월 16일 이의영, 강춘수와 함께 일본인 관장과 담판해 총독부 도서관 장서를 접수하고 서고(書庫) 열쇠를 인수했다. 8월 17일에는 도서수호문헌수집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어 1945년 8월 조선도서관협회 경성준비위원회 위원장·상무위원, 1945년 9월 1일 건국준비위원회문화시설전문위원, 1945년 9월 조선도서관협회 위원장을 지냈다. 1945년 10월 1일 새 도서관 명칭을 ‘국립도서관’으로 하고 초대 부관장에 부임했다.
1946년 4월 조선도서관학교(후에 국립도서관학교로 개칭) 교수, 1946년 5월 조선도서관협회 초대위원장, 1946년 9월 동국대 강사, 1946년 9월 국화여자전문학관장(國華女子專門學館長), 1947년 4월 조선도서관협회 전무이사, 1947년 8월 조선서지학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1950년 7월 13일 자택에서 북한 내무서원에게 납치됐으며, 1968년 발행된 『북한총람』에 따르면 1954년까지 인민지(人民誌)에서 잡부로 일하고, 1958년 12월경 함경남도 북청 과수농장 노동자로 이주했다고 전한다.
조선십진분류표(Korean Decimal Classification, 이하 KDCP)를 개발하고 보급한 공이 크며, ‘한국 도서관의 아버지’로 불린다. 2003년 10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