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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태현

한글동헌 태현
한자東軒太玄
유형인물
키워드1896
시대근현대
출생1896년 6월 14일(음)
입적1983년 8월 4일(음)
동헌(東軒) 완규(完奎)
주요 주석처합천 해인사, 남양주 불암사
용성 스님 뜻 이어 정진한 선승
용성 스님의 뜻을 이어 정진한 20세기의 선승이다. 1896년 6월 14일(음력) 충남 대덕군 기성면 산직리(대전시 서구 산직동)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이덕영(李德榮), 모친은 임영규(林榮圭)이다. 본관은 용인이다. 법명으로 사용한 속명은 완규(完圭). 또 다른 법명은 태현(太玄), 법호는 동헌(東軒)이다. 모친이 69송이의 연꽃을 꺾는데 동자승이 출현하는 태몽을 꾸었다. 1903년부터 외가가 있는 부여의 한문서당과 부친에게서 한학을 공부했다. 충남 연기(지금의 세종시)의 광동학교에서 신식 교육을 받았다. 1918년에 청나라 순치황제 출가시를 읽다 출가를 결심하고, 집안 어른들과 교분이 깊은 용성(龍城) 스님에게 감화받아 서울 대각사로 출가했다. 이후 용성 스님을 시봉하며 교학을 마쳤다. 1923년 용성 스님에게 ‘시심마(是甚麽)’ 화두를 받고, 금강산 장안사와 묘향산 상비로암(1925)에서 정진했다. 1926년 4월 장성 백양사에서 금해(錦海)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정진했다. 1927년 용성 스님을 모시고 함양에 화과원(華果院)을 설립해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실천했다. 1930년 이후 순천 선암사 칠전선원, 화엄사 탑전, 직지사 천불선원, 서울 대각사, 금강산 마하연, 천성산 선원, 범어사 금당선원에서 참선 수행을 했다. 1934년 8월 하동 칠불암 운상선원(雲上禪院)에서 용맹정진하다 깨달음을 성취하고 오도송을 지었으며, 용성 스님에게 동헌(東軒)이란 당호를 받았다. 1940년 용성 스님이 ‘유훈십사목(遺訓十事目)’을 부촉하고 열반에 든 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되자 귀국해 사형(師兄) 동산 스님을 도와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다. 그 뒤로 속초 신흥사 주지, 김제 금산사 주지, 전북 종무원장, 부산 범어사 주지, 경주 분황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1969년 용성 스님의 조국독립과 불교중흥운동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대각회(大覺會)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조계종 원로의원(1971)과 공주 마곡사, 의성 고운사, 장성 백양사, 구례 화엄사 조실을 지냈다. 1983년 8월 4일(음력) 화엄사 구층암에서 유촉(遺囑)을 묻는 제자들에게 임종게를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세수 88세, 법랍 66년.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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