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고 문성

한글동고 문성
한자東皐汶星
유형인물
키워드1897
시대근현대
출생1897년 2월 6일
입적1997년 7월 10일
동고(東皐)
주요주석처서울 대각사, 구례 화엄사
비소재지구례 화엄사
독립운동과 불교정화에 헌신한 고승
독립운동과 불교정화운동에 헌신한 20세기의 고승이다. 1897년 2월 6일 경주시 노서동에서 부친 박형일(朴亨一)과 모친 김해 김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박문성(朴汶星). 통도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고, 1911년 4월 15일 고성 옥천사에서 서응(瑞應)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17년 4월 통도사 대교과를 수료하고, 1918년 4월 옥천사 선원에서 첫 하안거를 마쳤다. 1919년 4월 진주 호국사에서 호은(虎隱) 스님에게 비구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1920년 서응 스님이 강사로 있는 합천 해인사에 머물며 독립운동에 참여한 후 김천 수도암으로 피신했다. 1921년 만해 스님이 지도하는 불교유신회(佛敎維新會)에 김법린, 김상호 스님 등과 가입했다. 1922년 중앙포교당에서 백초월 스님 강의를 들으며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1922년 대표적 친일 승려 강대련을 종로 일대에서 징치(懲治)한 명고축출사건(鳴鼓逐出事件)에 가담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1926)했지만 독립운동 참여와 강대련 명고축출사건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1929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하안거 정진에 이어 묘향산 보현사, 양산 통도사, 합천 해인사, 해남 대흥사, 고성 옥천사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1947년 고성 옥천사 백련암 선원에서 6년 결사 정진을 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종군포교사를 지내고, 서옹·성철·청담 스님과 함께 안거를 했다. 친일불교를 청산하는 불교정화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고성 옥천사 주지(1954), 비상종회의장, 조계종 재무부장(1957), 마하사 주지(1961), 통합종단 초대 감찰원장(1962)에 이어 조계종 감찰원장(1964, 1970, 1972), 원로의원(1978)을 지냈다. 1974년 감찰원장 사임 후 주로 부산 마하사와 관음정사에 주석했다. 1997년 7월 10일 부산 관음정사 은둔실(隱遁室)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100세, 법랍 86년. 2021년 8월 9일 독립유공자(대통령표창)로 추서됐다.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관리번호: 965061)에는 “1922년 3월 26일 서울 종로에서 친일 승려로 알려진 용주사 주지 강대련을 교단에서 쫓아내기 위한 ‘명고축출’을 주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관련자료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