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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만업

한글대의 만업
한자大義萬業
유형인물
키워드1901
시대근현대
출생1901년
입적1978년
대의(大義)
주요주석처고성 옥천사, 부산 마하사, 부산 관음정사
비소재지양산 통도사
참선 수행한 결과 대중에게 전달한 선승
참선 수행한 결과를 대중에게 전달한 20세기의 선승이다. 1901년 경북 예천군 풍양면 신기리에서 부친 이병규(李柄奎)와 모친 이억순(李億順)의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다, 19세(1919)에 도인(道人)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주유(周遊)하고, 1932년 정선 정암사에서 혜암(惠庵)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듬해 오대산 상원사 한암 스님 회상에서, 1934년에는 금강산 마하연 만공(滿空) 스님 문하에서 수행했다. 1936년 7월 금정산 범어사에서 일봉(一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1945년 만공 스님 법제자가 되어, 대의(大義)라는 법호를 받았다. 1940년 재단법인 선학원장을 지내고, 1941년과 1942년 계룡산 갑사와 설악산 봉정암에서 ‘업장 소멸 및 조국해방 기원 백일기도’를, 1942년에는 설악산 봉정암에서도 백일기도를 했다. 1945년 해방 후 서울 선학원에서 한글선학간행회 회주(1946)를 맡았으며, 3년간 『선가귀감』을 번역하여 3000부를 간행했다. 1949년 육군본부 순국영령 봉안소인 장충사(奬忠司) 사장(司長)으로 취임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왜색불교 청산을 취지로 시작된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다. 김천 직지사 주지(1953), 서울 화계사 주지(1954), 서울 조계사 주지(1955), 경기도 종무원장(1956), 계룡산 갑사 주지(1957), 조계종 총무부장(1958), 속리산 법주사 주지(1959), 조계종 감찰원장(1960), 선학원 제8대·제10대 이사장(1967~1971), 조계종 장로(長老, 1971), 대전 심광선원장(1973)을 역임했다. 이 밖에도 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총재(1969), 대한일민계몽회 총재(1970), 대한불교총연합회 이사장(1972), 한민족총회 결성준비위원회 부회장(1974)을 지냈다. 어린이 청소년 지도에 관심이 많았으며, 직접 지은 ‘효도가(孝道歌)’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부모말씀 곧잘듣고, 부모뜻을 잘받들어, 부모마음 즐겁도록, 이몸바쳐 다해보소. / 깊고깊은 부모은혜, 이몸받고 태어나서, 부모은중 모르오면, 사람이라 할수있소./ 세상에서 제일큰복, 효도하여 받게되오, 누구누구 할것없이, 효심갖고 살아가소. / 지성으로 섬기어서, 부모은공 갚으시오, 자비공덕 모르오면, 사람이라 할수있소.” 출가 이후 금강산 표훈사, 금정산 범어사, 설악산 백담사, 도봉산 망월사, 통도사 백련암, 법주사 복천암, 예산 수덕사 등의 선원에서 수십 안거를 성만했다. 1978년 6월 22일 서울 조계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8세, 법랍 47년.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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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이대의, 대한불교조계종대승회 | 서울: 건양문화사 | 1978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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