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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 재순

한글금당 재순
한자錦堂在順
유형인물
키워드1899
시대근현대
출생1899년
입적1973년 2월 17일(음)
금당(錦堂)
주요주석처김제 부용사, 순천 송광사
비소재지순천 송광사, 공주 마곡사, 김제 부용사
근대 교육 받고 송광사 복원한 고승
20세기에 활동하며 근대 교육을 받고 송광사를 복원한 고승이다. 1899년 전남 순천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최재순(崔在淳). 어려서 한학을 익히고, 1918년 순천 송광사 천자암에서 부일(扶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송광사 강원 졸업 후 취봉(翠峰) 스님과 일본 교토(京都) 린자이(臨濟)전문학교[지금의 하나조노(花園)대학]에서 유학하고 귀국했다. 1951년 5월 11일 한국전쟁 중 송광사가 전소(全燒)될 당시 주지(1950~1955)로, 경비망을 뚫고 들어가 화재를 진압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국군의 소개령(疏開令)이 해제되어 1954년 출입을 재개할 수 있었는데, 취봉·인암(忍庵) 스님 등 대중과 함께 돌아와 불에 탄 도량을 보고 대성통곡했다고 전한다. 1953년 정전 이후 대중과 대웅전 중창, 해탈문 중건, 성보박물관 건립, 나한파상(羅漢破像) 보수 등 송광사 복원에 전력을 다했다. 고무신이나 짚신을 신고 걸어 다니며 마을에서 탁발해 불사 비용을 마련했다. 신발이 떨어지면 지푸라기로 묶거나 여의찮으면 맨발로 걸으며 탁발을 했다. 송광사 주지로 있던 1957년 4월 송광사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민의원(民議院) 의장에게 제출했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도 지냈다. 송광사 복원 불사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문교부 장관 포상장(1956)과 문화훈장(1962)을 받았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임석진 스님은 금당·취봉 스님에 대해 “가히 유학의 쌍벽이며, 사리(事理)의 쌍벽이고, 중창(重創)의 쌍벽”이라고 칭송했다. 불교정화 당시 취봉 스님과 함께 “절집 일은 부처님 가르침대로 풀어야 한다.”라면서 “효봉(曉峰) 스님을 모셔 와 송광사의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이뤄야 한다.”라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송광사는 물리적 충돌이 없었다. 평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야지 신세 지면 안 된다. 남을 서운하게 하지 말고 베풀고 돕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강조했다. 1973년 2월 17일(음력) 오후 4시 송광사에서 세수 75세, 법랍 55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유지에 따라 장례는 3일장으로 간소하게 치렀으며, 다비 후 유골은 조계산에 뿌렸다. 상좌로 희길(喜吉), 대은(大隱), 법휘(法輝), 대휘(大輝) 스님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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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승비문총집
    도서 지관 편 |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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