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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상언

한글고암 상언
한자古庵詳彦
유형인물
키워드1899
시대근현대
출생1899년 10월 5일
입적1988년 10월 25일
고암(古庵)
주요 주석처순천 송광사
자비와 화합으로 후학 지도한 율사
자비와 화합으로 후학을 지도한 20세기의 율사이다. 1899년 10월 5일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식현리 425번지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윤문, 모친은 하원행이다. 속명은 윤지호. 적성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917년 합천 해인사에서 제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강원 재학 시 3.1운동에 비밀리에 참여했다.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1922년 용성 스님에게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훗날 용성 스님 전법제자가 됐다.(1967년 7월 28일 자 『조선일보』에는 ‘23세 때 통도사 대교과를 졸업했으며’로 되어 있다.) 1923년 7월 해인사에서 안거를 한 이후 직지사 천불선원, 통도사 극락선원, 덕숭산 정혜선원, 도봉산 망월선원, 백양사 운문선원, 천성산 내원선원,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유점사·표훈사·마하연, 묘향산 보현사 등에서 정진했다. 이때 제산, 혜월, 만공, 용성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해인사·백련사·표훈사·직지사·범어사 선원 조실, 나주 다보선원장, 해인사 용탑선원 조실로 후학을 지도했다. 1965년 해인사 주지로 임명됐다. 조계종 종정에 세 차례(1967년 7월 제3대, 1972년 7월 제4대, 1978년 5월 제6대) 추대됐다. 제4대 종정 추대 당시 “불자(佛子)는 세계평화와 개인의 안녕을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임을 자각해야 한다.”라면서 “세계에 어려움이 있고 국가에 난관이 있고 사회에 고난이 있을수록 우리 종단과 불자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어야 함은 불타부촉(佛陀付囑)이나 신앙에서 당연하다.”라고 설했다. 노년에는 미국,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호주 등 해외에서 국제보살계단을 열었다. 1988년 10월 25일(음력 9월 15일) 오후 8시 25분 가야산 해인사 용탑선원에서 세수 90세, 법랍 71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1988년 3월 31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미국 방문 중 교통사고를 당해 4월 초 귀국해 치료를 받았다고 전한다. 1988년 10월 26일 자 『동아일보』는 “불교계에서 ‘봄바람처럼 비단처럼’ 부드럽고 자비로운 큰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다.”라면서 “수행이 출중하고 계율이 청정하면서도 이렇게 소박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종단이 내분으로 어려워졌을 때인 지난 67년과 72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종정을 맡아 종단 내에 신뢰감을 형성,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기도 했다.”라고 보도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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