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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 태수

한글고봉 태수
한자高峰泰秀
유형인물
키워드청암사, 강백, 망월사
시대근대
출생1900년
입적1968년
고봉(高峰)
주요주석처대구 파계사
비소재지대구 파계사
참선 교학 넘나들며 후학 양성한 수행자
1900년 8월 11일 황해도 신천군 낙도면 도습리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강영곤(姜永坤), 모친은 덕수 이씨. 속명은 강재욱(姜在旭)이고 본관은 진주이다. 부친이 항일의 뜻이 있고 유교 규범을 중시해 경서(經書)와 사기(史記) 등 한학을 공부했다. 선친의 뜻에 따라 혼인했지만 부인이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나 인생무상을 절감하고 고향을 떠났다. 경성, 평양, 원산 등을 오가며 포목상에 종사했는데, 25세 되던 해에 고향 친구인 금초(錦超) 스님을 만나 참선 수행을 알았다. 용성(龍城)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대소승계를 수지했다. 도봉산 망월사 만일선회(萬日禪會)에서 정진했으며, 천성산 내원사에서 용성 스님, 직지사 천불선원에서 제산(霽山) 스님, 덕숭산 정혜사에서 만공(滿空)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금강산 마하연과 해인사 퇴설선원에서도 정진하며 이력을 쌓았다. 참선수행과 더불어 교학연찬도 중시했다. 해인사 고경 스님, 법주사 석상 스님, 범어사 구해 스님, 사불산 환경 스님 등 강백의 지도를 받았다. 서울 개운사에서 석전 스님에게 인가받으며, 고봉(高峰)이란 법호를 받았다. 55세까지 해인사, 은해사, 대원사, 쌍계사, 다솔사, 청암사 등에서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조계종 종정 동산(東山) 스님이 “사제인 고봉은 보통 강사와는 다르다.”라고 칭찬했고, 직지사 조실 관응(觀應) 스님도 “나도 강사이지만 고봉스님은 강사로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1967년 김천 청암사 강원 졸업식에서 “이제부터 졸업이 아니라 학문탐구와 인간의 진면목을 터득하는 길목의 출발점을 알았을 뿐이다.”라고 당부했다. 참선수행도 중시했다. 매일 새벽 3시면 일어나 화두를 챙기고 경학을 연찬했다. 은사 용성 스님에게 받은 ‘시심마(是甚麽]’라는 화두를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대강백이었지만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으며, 10여 수의 한시만 전해온다.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一杖穽雲歸故里(일장정운귀고리) 지팡이 하나로 구름을 뚫고 고향에 돌아가니 四顧能無識我人(사고능무식아인) 사방을 돌아보아도 나를 아는 사람은 없구나 夫峰山下伸脚臥(부봉산하신각와) 부봉산 아래 다리를 펴고 누워 無生一曲太平春(무생일곡태평춘) 태평한 봄날 무생곡을 부르노라. 1968년 1월 18일 김천 청암사에서 세수 68세, 법랍 45세로 원적에 들었다. 은법제자로 우룡 종한(雨龍鐘漢), 진산 종하(晋山鐘夏) 스님, 전강제자로 우룡 종한, 고산 혜원(杲山慧元) 스님이 있다. 김천 청암사와 서울 관음사에 비가 모셔져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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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고승비문총집
    도서 지관 편 |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 2000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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