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환응 탄영 |
|---|---|
| 한자 | 幻應坦泳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백양사, 운문암, 추사, 선운사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47년 |
| 입적 | 1929년 |
| 호 | 환응(幻應) |
운문암에서 25년간 강석 펼친 강백
1847년 4월 전북 고창(당시는 무장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기우(金基愚), 모친은 박씨(朴氏).
14세에 고창 선운사에서 성일(性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보월(寶月) 선사에게 사미계를 받았다. 16세부터 백양사 운문암 경담(鏡潭) 스님에게 경학을 배웠다. 19세(1865)에 경담 스님에게 구족계를 수지했다.
순창 구암사 설두(雪竇) 스님과 순천 송광사 우담(優曇) 스님 회상에서 교학을 깊이 공부했다. 31세에 경담 스님 법제자가 된 후 운문암에서 25년간 강석(講席)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백양사와 청류암에서도 학인을 지도하고, 노년에는 운문암 인근에 우은난야(愚隱蘭若)를 짓고 참선 수행에 매진했다.
법명 ‘탄영’은 추사 김정희가 백파(白坡, 1767~1852) 스님에게 전한 다섯 가지 호 가운데 하나이다. 추사는 “뒷날 후학 가운데 식도리자(識道理者: 깨달음을 얻은 도인)가 나오면 하나씩 나누어 주시오.”라며 전했다고 한다.
64세(1912)에 백양사 주지를 맡았으며, 전통 교학뿐 아니라 신학문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백양사 청류암에 근대교육기관인 광성의숙을 건립하는 데 힘을 보탰다. 1915년 광성의숙(廣成義塾) 숙장(塾長) 겸 강사를 지냈다. 1921년 제자 호명(浩溟) 스님이 선운사 주지가 된 뒤에는 동운암에 주석했다.
1928년 2월 15일 열반재일에 시봉에게 이같이 당부했다.
나도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이 수년 내 있을 것이다. 한번 왔다 한번 가는 것은 감인계(堪忍界: 인간세상)에 상사(常事: 보통일)가 아니냐. 언제든지 환망진구(幻妄塵垢)에 쌓인 몸을 일분일초라도 지체 말고 네 손으로 꾹꾹 묶어 얼른 태워 버리게 하여라. 나의 본원(本願)이 있는바 화장도 속히 될 것이다.
1929년 1월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 승려대회에서 교정(敎正)으로 선임됐다. 함께 교정으로 추대된 스님은 한암(寒岩), 해담(海曇), 동선(東宣), 한영(漢永), 용허(龍虛), 경운(敬雲) 스님이다.
1929년 음력 4월 7일 오전 11시 선운사에서 세수 82세, 법랍 64세로 시적(示寂)했다. 원적에 드는 날 군산에 다녀온 시봉에게 “너 잘 왔다.”라며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치면서 “하하. 우습구나. 참 묘(妙)하고 묘하구나.”라며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무상이다. 자네들도 백사(百事)를 수연(隨緣)하면서 묘한 진리를 제각기 한번 찾아보아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다비 후 수습된 사리가 3일간 빛이 나는 신이(神異)한 일이 있었다. 1942년 6월 선운사에 비를 세웠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