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혜월 혜명 |
|---|---|
| 한자 | 慧月慧明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경허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62년 |
| 입적 | 1937년 |
| 호 | 혜월(慧月) |
한국불교 간화선 수행 중흥한 무심도인
1862년 6월 19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신씨(申氏)이고, 본관은 평산이다. 출가 전 이력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13세에 덕숭산 정혜사에 입산해, 15세에 혜안(慧眼)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0여 년간 관음정진을 하다 24세 되던 해에 경허(鏡虛) 스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새로 발심을 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치열하게 수행해 경허 스님이 “새끼 잃은 어미 소가 새끼 소를 생각하는 것과 같고, 3대 독자를 잃은 홀어머니가 죽은 아들 생각하듯 정진한다.”라고 칭찬했다.
서산 천장암(천장사) 인근 바위굴에서 7일을 기한으로 정진했는데, 6일째 되는 날 경허 스님이 “내일은 길을 떠나야 하니 짚세기나 하나 지어주게.”라며 짚을 넣어주었다. 이에 짚신 한 켤레를 삼고는, 또 하나의 짚신을 틀에 넣고, ‘탁’하고 두드린 망치소리에 깨달음을 이루었다.
이 소식을 들은 경허 스님이 인가하고 혜월이라는 법호를 전했다. 전법게송은 이렇다.
了知一切法(요지일체법) 일체법을 요달(了達)해 알 것 같으면
自性無所有(자성무소유)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如是解法性(여시해법성)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卽見盧舍那(즉견노사나) 곧 노사나불을 보리라
依世諦倒提唱(의세제도제창) 세상 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無生印靑山脚(무생인청산각) 문자와 도장이 없는 도리에 청산을 새겼으며
一關以相塗糊(일관이상도호)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이후 27년간 덕숭산에 머물렀으며, 51세(1913년 무렵)에 남방으로 주석처를 옮겼다. 양산 미타암과 내원암 등 선방을 유력하고는 부산 선암사에 머물며 정진했다. 경허 스님이 열반(1912년 4월경)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듬해(1913년) 여름 철우(鐵牛). 운봉(雲峰). 운암(雲庵) 스님 등 선암사 대중 5~6명과 함께 갑산으로 가서 법구를 수습했다. 동행한 철우 스님은 이때 혜월 스님의 눈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회고했다. 선암사에서 주석할 당시 양치하던 중에 치사리(齒舍利)가 나와 빛을 발한 적이 있었는데, 즉시 “에이, 고약한 놈.”라이라며 바닥에 떨어진 치사리를 발로 밟았다.
1937년 2월 선암사 뒤에 자리한 백양산에서 솔방울을 자루에 담아 내려오는 길에 평소에도 자주 쉬던 중턱에서 세수 75세, 법랍 63세로 입적했다. 유훈에 의해 다비 후 사리를 수습하지 않았다. 부도와 비를 세우지 않은 것도 스님의 뜻을 따른 것이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