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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봉 용하

한글혜봉 용하
한자慧峰龍河
유형인물
키워드남장사
시대근대
출생1874년
입적1956년
혜봉(慧峰)
탑소재지예산 수덕사
비소재지예산 수덕사
선교(禪敎) 노장유학(老莊儒學)에 밝은 수행자
1874년 3월 23일(음력) 충주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이규직(李奎職), 모친은 광산 김씨이다. 속명은 이종국(李鍾國)이며 본관은 경주.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사서삼경 등 한학을 익히고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 성장했다. 16세에 한양에 올라와 친척집에 머물며 17세(1891)에 관직에 나섰다. 종4품에 해당하는 궁내부 주서(主書)로 근무했지만 풍전등화에 놓인 조선의 현실에 낙담해 벼슬을 버리고 출가의 뜻을 세웠다. 1904년 상주 남장사에서 영봉(靈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선원과 강원에서 참선수행과 교학연찬을 하며 정진했다.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선산 도리사 주지, 동화사 대구포교당 포교사, 의성 고운사 포교당 포교사, 서울 각황사 중앙포교사 등의 소임을 보았다. 한때 금강산 순례에 나서기도 했지만, 1937년부터 상주 남장사 조실로 후학을 제접하고 신도들의 신행을 지도했다. 출가했지만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애국심은 변함이 없었다. ‘병란 등 나라에 큰일이 있으면 땀을 흘린다’라는 전설이 전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상주 남자사 보광전 닫집 위에 태극기를 몰래 걸어놓고 조선의 독립을 기원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즐겨 읽고 필사까지 했는데, 필사한 종이는 경전 갈피에 배접(褙接)해 숨겼다. 훗날 부처님 가피를 빌기 위해 경전에 배접한 것이라 회고했다. 지역의 유생(儒生)들과 교유했는데, 처음에는 그를 업신여기던 유생들이 그가 한학에 능통하고 덕망이 높음을 알고는 ‘혜봉선생’이라고 부르며 예를 표했다고 한다. 매일 한시(漢詩)로 일기를 기록했는데, 시자가 지어온 솔잎 섞은 죽을 마시고 쓴 시는 청빈한 삶을 대변한다. 松葉和爲粥(송엽화위죽) 솔잎을 섞어 죽을 쑤니 神淸又腹香(신청우복향) 정신도 맑고 배도 향기롭네 生涯如此淡(생애여차담) 삶이 이렇게 담박하니 何拘世間相(하구세간상) 어찌 세상일에 구애되랴. 남장사에서 주석하며 수행하며 후학 양성에 주력했는데, 1956년 5월 26일(음력) 세수 83세, 법랍 52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상주 남장사 사적기」, 「북장사 사적기」, 「용흥사 시왕전 중수기」, 「청룡사 극락전 창건기」, 「문수사 사자암 상량문」 등 11편의 기(記)를 남겼다. 전국비구니회장을 지낸 광우 스님이 딸이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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