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해봉 법룡 |
|---|---|
| 한자 | 海峰法龍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해동역경원, 조계종, 총무원장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91년 |
| 입적 | 1969년 |
| 호 | 해봉(海峰) |
| 탑소재지 | 상주 남장사 |
통합종단 조계종 출범에 기여한 스님
1891년 7월 27일 평안북도 자성군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김법룡(金法龍), 본관은 은율이다. 1908년 7월 묘향산 보현사에서 박초월(朴初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12년 9월 보현사 진상학교(眞常學校) 보통과와 고등과를 수료했다. 일본 경도(京都) 임제대학(臨濟大學, 현 하나조노대)에서 신학문과 불교를 공부하고 1915년 졸업했다.
1916년 4월 묘향산 보현사에서 정좌(靜座) 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했다. 1924년 9월 평북 영변 오봉사 주지, 1932년 묘향산 보현사 주지를 지냈다. 보현사 주지로 재임 시 매년 젊은 스님 20여 명을 선발해 국내외에 유학을 보내며 인재를 양성했다. 1931년에는 『조선불교선교양종종보(朝鮮佛敎禪敎兩宗宗報)』의 발행을 책임졌다. 1937년 총본산(각황사) 건설위원, 1940년 10월 총무원 서무부장을 지냈다. 1941년 4월 보현사에서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수지했다.
1945년 8월 해방 후에는 해동역경원 부원장(1946년 1월), 화광교원(和光敎園) 원장(1948년 3월)으로 활동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눈을 피해 검정색으로 물들인 군복을 입고 동대문시장에서 엿장수를 하면서 만행을 했다고 전한다. 서울 수복 후 이 사실을 안 청담 스님이 서울역 인근 염천교 천막촌에 머물고 있던 스님을 조계사로 모셔왔다.
통합종단이 출범한 1962년에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8월), 동국학원 이사(11월), 조계종 제2대 총무원장(12월)에 선출됐다. 1963년 5월 1일 총무원장 자격으로 발표한 담화문에서 “지금 주변은 살펴볼 여지없이 혼돈긴박(昏頓緊迫)하고 형용할 수 없는 갈등 속에 우리를 휘몰아 넣고 있다. 이때를 당해 과연 불보살의 후계자인 우리의 믿음과 행동은 부끄러움이 없을까.”라며 통합종단 출범 후 한국불교 미래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1963년 12월 1일자 『대한불교신문』(지금의 불교신문)에 실린 송년사에서는 “1963년도는 우리 종단에도 커다란 흔적들을 남긴 해이다. 이른바 통합종단의 기틀과 그 육성이며 또한 각 사찰의 통일종단에의 등록과 그 성과, 동대(東大)의 새 정리, 실로 큰일들이 행해진 해.”라고 소회를 밝혔다. 1965년 8월 총무원장 자격으로 「전국사찰 주지 및 불교도에 고함」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1962년 12월 30일부터 1966년 12월까지 봉직했다.
불교신문 사장(1963~1964)과 대동학원 이사장(1965)으로 언론문화 창달과 교육사업에 기여했다. 1965년 역경(譯經)후원회 발기인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1969년 11월 23일 수원 봉녕사에서 법랍 62세, 세수 70세로 입적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