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퇴운 원일 |
|---|---|
| 한자 | 退雲圓日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해인사, 직지사, 천불선원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7년 |
| 입적 | 1939년 |
| 호 | 퇴운(退雲) |
| 탑소재지 | 양산 통도사 |
삼보정재 아끼며 수좌 외호한 스님
1877년 7월 27일 경남 합천 읍내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파평 윤씨. 출가 전 이력은 전하지 않는다.
15세에 고향에 있는 해인사로 출가했다. 은사는 직지사 주지를 지낸 제산정원(霽山淨圓, 1862~1930) 스님의 사제인 우송(友松) 스님이다. 1916년 봄, 제산 스님을 모시고 합천 해인사에서 김천 직지사로 주석처를 옮겨 천불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공부에 깊이가 있어 수좌들이 운집했으며, 1928년 봄에는 직지사 법당과 요사 등의 번와불사를 진행하며 도량을 일신했다. 삼보정재의 소중함을 절감하여 사재(寺財)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며 아꼈다. 그러나 수좌들이 화두 참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에는 각별하게 신경 썼다.
한암 스님이 찬(讚)한 「퇴운원일선사비문」에는 “평소에 근검절약하였고, 시주물을 아끼고 보호하여 논 100여 석을 사들여 그 세수(歲收)를 선원의 양식으로 삼았는데, 임종 시에 유언하기를 이것을 다른 데에 쓰지 말고 선방 수좌들의 양식으로만 삼아라.”라고 하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1939년 4월 4일 직지사 천불전의 중수를 당부하고 세수 62세, 법랍 48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직지사에 비가 있다. 상좌로 직지사 주지를 지내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김봉률(金奉律) 스님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