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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 종천

한글춘성 종천
한자春城鍾天
유형인물
시대근대
출생1890년
입적1928년
춘성(春城), 만동생(萬東生), 정안자(正眼子)
비소재지성남 봉국사
교육, 언론, 사회, 청년운동으로 불교 미래 개척한 수행자
1890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출가 이전 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출가 전에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거나 보통학교를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 1900년대 초중반 고성 옥천사로 출가해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 『축산보림(鷲山寶林)』 발간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구하(九河) 스님 등 통도사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경 조동종제일중학에 이어 동양대 윤리철학교육과를 1919년 3월에 졸업했다. 1920년 1월 통도사에서 발행한 『축산보림』과 1920년 12월 조선불교청년회 통도사지회에서 창간한 『조음(潮音)』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았다. 1922년 불교유신회(佛敎維新會)에 참여하고, 일제가 제정한 사찰령(寺刹令)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1923년 1월 6일 조선불교유신회가 조선총독부에 요구사항을 전하는 질문위원으로 선출됐다. 1922년 울산 성남동 연못을 특정인에게 대부하여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을 때 시정을 요구하는 대표로 위촉됐다. 1924년 1월 조선불교청년회 총무로 선출됐는데, 당시 총재는 만해 스님이다. 이후 전조선청년당, 민립대학(발기인), 언론집회압박탄핵회 등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특히 울산과 진주 등에서 청년운동, 교육사업, 주민계몽운동을 전개했다. 이와 더불어 1925년 통도사 진주포교당 포교사로 불교선양강습서(佛敎宣揚講習署)를 설치하고, 통도사 본말사사업연구위원회 본산위원(本山委員), 진주 진명학원(振明學院) 책임강사를 맡았다. 1926년 6월 김정식, 신용구, 강병선, 김기종 등과 진주경찰서에 검거된 후 울산으로 이주했다. 병마와 싸우다 1928년 10월 23일(음력 9월 10일) 울산 자택에서 향년 38세로 별세했다. 1928년 11월 11일 각황사에서 천도식이, 1928년 12월 10일 울산 백양사에서 49재 추도회가 열렸다. 제자로 강정룡(姜正龍)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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