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진응 혜찬 |
|---|---|
| 한자 | 震應慧燦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화엄사, 임제종, 교학연찬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73년 |
| 입적 | 1941년 |
| 호 | 진응(震應) |
| 탑 소재지 | 보은 법주사 |
일본불교 맞서 임제종 설립 운동 전개한 대강백
1873년 12월 24일 전남 구례군 대전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진원복(陳元福), 모친은 이노인(李老仁). 세속 이름은 진동해(陳東海)인데, 호적에는 진진응(陳震應)으로 돼 있다. 어려서 서당에서 3년간 한학을 공부하면서 『지나사략(支那史略)』과 『통감(通鑑)』 등을 익혔다.
15세(1887년 9월 22일)에 구례 화엄사 봉천암(鳳泉庵)에서 오응암(吳應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미계는 화엄사 박하월(朴霞月) 스님(1888년 7월)에게, 구조계와 대승계는 하동 쌍계사 박호은(朴虎隱) 스님(1913년 2월)에게 수지했다. 1888년 10월 봉천암에서 안거 수행한 이후 화두를 참구했다.
교학연찬에도 매진하였는데 봉천암 박하월 스님(1888~1889), 천은사 수도암 원화(圓華) 스님(1889~1890), 순천 선암사 대승암 경운(擎雲) 스님(1893~1895), 순창 구암사 설유(雪乳) 스님(1895~1896) 문하에서 공부했다.
1896년 3월 천은사 수도암에서 응암 스님의 법을 이었다. 화엄사에서 대교사(大敎師) 법계(1897년 2월), 묘향산 보현사에서 대선사(大禪師) 법계(1926년 10월)를 품수했다.
당대 제일의 대강백으로 존경받으며 후학을 양성했다. 천은사 수도암(1897~1899), 화엄사 보적암(1899~1900), 산청 대원사(1907), 구례 화엄사 불교전수부(1919), 구례 천은사 불교전문강당(1920), 동래 범어사 불교전문강당(1923), 묘향산 보현사 불교전문강당(1926) 강사를 역임했다.
『한국불교최근백년사연표』에는 제자로 보이는 김영해(金影海)가 “師(사)는 교리의 강설에 있어서 인도의 天親(천친), 無着(무착)과 중국의 淸凉(청량), 圭峰(규봉)도 양보하리만큼 능통하였으며 外典(외전)에 있어서도 世人(세인)이 경악할 정도로 해박하였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선암사 경운 스님은 1930년 음력 8월에 보낸 서신에서 “박한영 스님과 더불어 폐와 간을 서로 비추며 한마음으로 죽을힘을 다하여 이 종교를 잡아서 마군(魔軍)에게 포섭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라고 당부하고 있다. 친일불교를 경계하며 박한영 스님과 함께 조선불교 수호에 나서 달라는 요청이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08년 8월 화엄사에 근대교육기관인 신명학교(新明學校)를 설립했으며, 1917년 화엄사 염송대회(拈頌大會) 종주(宗主)를 지냈다.
1941년 구례 화엄사에서 세수 69세, 법랍 54세로 원적에 들었다. 법맥은 서응 동호(瑞應東豪) 스님을 통해 문성(汶星) 스님을 거쳐 수진(守眞), 유광(有光), 현응(玄應), 일우(一宇) 스님에게 전해졌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