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제산 정원 |
|---|---|
| 한자 | 霽山淨圓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직지사, 천불선원, 장좌불와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62년 |
| 입적 | 1930년 |
| 호 | 제산(霽山) |
산문 밖에 출입하지 않으며 화두 참구한 선승
1862년 3월 13일 경남 합천군 가야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김씨이며, 본관은 선산이다. 출가 전 이력은 전하는 바가 없다.
14세에 합천 해인사로 출가해 신해 서장(信海瑞章)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15년간 해인사에서 수행했는데, 원주 소임을 보면서 대중 외호에 진력했다. 30세에는 수월(水月, 의성 고운사), 천원(天圓) 스님과 경허(鏡虛) 스님 회상에서 정진했다.
사명대사 법맥을 계승한 우송(友松) 스님의 법을 이었다. 1913년 김천 직지사로 주석처를 옮겨 천불선원에서 수좌들을 인도했다. 이때부터 원적에 든 1930년까지 천불선원 조실을 지냈는데, 탄옹, 경봉, 만봉, 남전, 전강, 고암, 동산 스님 등이 회상에서 정진했다. 직지사 천불선원 벽안당(碧眼堂)에서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면서 화두 참구에 집중하고 산문 밖 출입을 금했다.
「黃岳五十年(황악오십년)」이란 시를 남겼다. ‘황악산에 들어온 지 오십년’이란 의미로, 출가 50년을 돌아보며 지은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今朝時出山(금조시출산)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산을 떠나네
兜率何處在(도솔하처재) 도솔천이 어딘지 묻는다면
拈起拄杖子(염기주장자) 주장자를 번쩍 들어 보여 주리라.
1930년 8월 24일(음력) 세수 69세, 법랍 56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입적을 앞두고 모인 문도들이 “생이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본래 불생이거늘, 어찌 죽음이 있겠는가. 북이 서로 치고 바다 밑에 불이 나서 모두 태워 버리니 천고만고에 다만 이러할 뿐이로다.”라고 답했다.
지관 스님이 저술한 『한국불교계율전통』(2005)에는 제산 스님이 용성 진종(龍城震鍾, 1864~1940) 스님에게 율맥을 전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잡지 『불교』에는 ‘초의(草衣) → 범해(梵海) → 제산 → 호은(虎隱)→ 금해(錦海)’로 계맥이 이어졌다고 한다. 대련(大蓮), 보담(寶潭), 구성(龜城), 응해(應海), 남전(南泉) 스님을 비롯해 40여 명에게 전계(傳戒)했다. 한암 스님이 지은 비명(碑銘)을 새긴 비석이 김천 직지사에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