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동암 성수 |
|---|---|
| 한자 | 東庵性洙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봉선사, 불교정화, 석굴암 |
| 시대 | 근대 |
| 출생 | 1904년 |
| 입적 | 1969년 |
| 호 | 동암(東庵) |
용성 스님 법맥 이어 한국불교 전통 수호한 스님
1904년 7월 26일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박봉오(朴鳳梧), 모친은 최경오(崔慶吾)이며, 속명은 승수(承洙)이다. 본관은 밀양.
출가 이전에 한학과 보통과정의 신교육을 받았으며, 일제에 저항하는 일에 가담했다 검거를 피해 묘향산 보현사로 몸을 숨겼다. 이때 불교와 인연을 맺었으며, 18세(1921)에 남양주 봉선사에서 월초(月初)스님의 제자인 인담(印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세(1922)에 서울 대각사에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인 용성(龍城) 스님에게 건당하여 법제자가 됐다. 이때 받은 법호가 동암(東庵)이다.
금강산 장안사에서 진허(震虛) 스님에게 비구계를 수지하고, 건봉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를 마쳤다. 용성 스님의 뜻을 받들어 10년간 중국 상해와 북간도, 일본 등을 오가며 수행과 독립운동을 함께 했다.
1934년 봉선사에서 대덕(大德) 법계를 품수 받고, 1945년 해방 무렵까지 강화 보문사 주지를 지냈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이 귀국할 때 ‘임시정부 봉영회(奉迎會) 회장’을 맡았다. 1945년 12월 12일 김구, 이시영 등 임시정부 요인을 초청해 서울 대각사에서 환영회를 개최했다.
1950년대 이후에는 효봉, 동산, 청담 스님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다. 통합종단 출범 이전에 총무원 재무부장을 맡아 종단 재원 마련에 앞장섰다. 서울 대각사, 의정부 망월사, 강화 보문사, 보은 법주사, 김천 직지사, 서울 봉은사, 양양 낙산사, 영주 부석사, 선산 도리사 주지를 역임했다. 상좌 초안 스님이 은사 동암 스님의 뜻을 받들어 양주 석굴암 중창 불사를 진행했다. 1965년 7월 동산대종사호법봉찬회(東山大宗師護法奉讚會) 부회장을 지냈다.
1969년 11월 2일(음력 9월 23일) 서울 녹야원에서 세수 66세, 법랍 48세로 입적했다. 상좌로 도안, 대인, 초안, 적조, 광철, 석운, 용택, 석천, 해안, 도천, 법안, 천관, 봉묵 스님을 두었고, 손상좌로 도일 스님 등이 있다.
저서로 『윤회전생』, 『지옥과 극락』, 『아미타경역(譯)』 등이 있지만 전하지는 않는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