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용음 법천 |
|---|---|
| 한자 | 龍吟法泉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만공, 마곡사, 수덕사, 수좌대회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87년 |
| 입적 | 1951년 |
| 호 | 용음(龍吟) |
| 주요 주석처 | 망월사, 통도사, 묘관음사 |
| 비 소재지 | 부산(기장) 묘관음사 |
만공 스님 법맥 계승해 선풍 진작한 수좌
1887년 10월 2일 경북 문경군(지금의 문경시) 산북면 회룡리에서 출생했다. 부친 황덕진, 모친 정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속가 이름은 법해(法海), 본관은 평해(平海)이다.
14세에 사불산 대승사에서 엄침송(嚴枕松)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법천(法泉)이란 법명를 받았다. 문경 김룡사에서 김응하 스님에게 경학을 배우고, 1928년에는 마곡사에서 중덕(中德) 법계를 품수했다. 그해 수덕사로 주석처를 옮겨 입승(入繩)과 선덕(禪德)을 지내며 참선 수행을 했다.
수좌대회 준비위원(1934년 12월), 회원심사위원(1935년 3월)으로 활동하고, 1935년 3월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朝鮮佛敎禪宗首座大會)와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임시 발기회에 만공 스님과 함께 참석했다. 1935년 조선불교선종 중앙선원 금강계단 칠증사(七證師)로 등단했다.
1942년 6월 『경허집(鏡虛集)』 간행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제방의 방함록에 따르면 1913년 문경 대승사, 1914년 동안거, 1915년 동안거, 1916년 하안거, 1917년 동안거, 1919년 동안거, 1920년 동안거, 1921년 하안거, 1921년 동안거, 1949년 하안거 등 60안거 가까이 성만했다.
덕숭산에서는 1927년(정묘년) 동안거부터 1933년(계유년) 동안거까지, 1945년(을유년) 동안거와 1946년(병술년) 하안거, 동안거에 방부를 들였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관보(官報)에 실린 ‘주지이동(住持異動)’ 자료에는 용음 스님이 수덕사 주지를 지낸 사실을 포함해 모두 일곱 차례 등장한다.
이후 수덕사에서 마곡사로 주석처를 옮겨 토굴암에서 수행하다 1951년 1·4후퇴 이후 눈이 많이 내린 날 입적했다고 전한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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