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용악 혜견 |
|---|---|
| 한자 | 龍岳慧堅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대장경, 석왕사, 통도사, 용악집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30년 |
| 입적 | 1908년 |
| 호 | 용악(龍岳) |
| 주요주석처 | 예산 수덕사, 공주 마곡사 |
팔만대장경 인경불사 성취한 스님
1830년 함경도 함산(咸山)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우원(金宇杬). 본관은 김해이며, 스님의 속명은 전하지 않는다. 양친이 세상을 떠나자 13세에 안변 석왕사에서 신암(信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수계사는 풍명(豊溟) 스님이고, 영담 장학(永潭藏學) 스님의 법을 이었다.
“평생 『금강경』을 지송(持頌)하고, 정토발원(淨土發願)하며, 숙원(宿願)이 팔만대장경 인간(印刊)인데 미과(未果).”라고 했다. 『금강경』을 지극정성으로 10만 편(遍) 암송하여, 치아사리 1과가 출현했지만, 사실을 알리지 않고 몰래 바위틈에 숨겼다.
66세까지 석왕사에서 총섭(總攝)까지 지냈는데, 팔만대장경 인경불사 원력을 세우고, 1897년 양산 통도사로 주석처를 옮겼다. 통도사와 합천 해인사에서 각각 100일 기도를 하고 팔만대장경 인경불사에 들어갔다. 왕실, 조정대신, 남도관찰사, 언양군수, 양산군수 등 지방관료까지 후원금을 내는 등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됐다. 인경승(印經僧) 1000명과 인부(人夫) 1만여 명이 참여했다. 인경한 팔만대장경은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삼보사찰에 각 1부씩 소장하고, 1부는 강사 스님들이 소장해 나눠 읽도록 했다고 전한다.
이후 양산 통도사 장경전 옆에 주석처를 정하고 『금강경』 독송을 하며 정진했다. 통도사 황화각(皇華閣) 상량문도 스님 친필이다. 1908년 2월 15일 통도사에서 세수 79세. 법랍 65세로 원적에 들었다.
1901년 구하(九河) 스님이 글을 모아 『용악당사고집(龍岳堂私藁集)』을 발간했다. 구하 스님의 서문은 이렇다.
우리 (용악) 스님은 관북 석왕사가 본사로, 생각이 무리 가운데 빼어나고 지혜가 대중 가운데 뛰어나셨으며,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일상의 공부를 삼으신 한 분의 거룩한 승보이셨다. 나라를 복되게 하고 세상을 도우며, 전쟁이 없어지고 재난이 영원히 사라져 온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하고, 때맞추어 단비가 내려 해마다 풍년이 들어 조정과 백성이 태평하고, 여러 관리들이 제각기 맡은 직분을 다하여 온갖 물산이 풍요롭기를 바라서, 조정으로부터 물자를 도움받아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출하여 봉안하였다.
1993년 연관(然觀) 스님이 번역하고, 석정(石鼎) 스님이 발행인이 된 『용악집』이 출간됐다. 동국대 도서관에는 간찰(簡札, 편지)이 보관돼 있다. 순천 송광사에 일타 스님이 찬한 비문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