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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 음관

한글수월 음관
한자水月音觀
유형인물
키워드천장암, 경허, 천수대비주, 참선
시대근대
출생1885년
입적1928년
수월(水月)
주요주석처수원 용주사
경허의 법을 이은 제자
188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출가 전 이력에 대해선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속성은 전(田)씨로 알려져 있는데, 전(全)씨, 김(金)씨, 제(祭)씨, 최(崔)씨라는 이야기도 있다. 부모님을 여의고 머슴살이를 하며 연명했다. 천성이 착하고 성실해 부지런해 신망을 얻었지만 스무 살까지 글을 배우지 못했다. 서산 천장암(천장사)으로 출가해 공양주와 나무하는 일을 주로 했지만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를 알고 난 뒤에는 일념으로 염송했다. 경허(鏡虛) 스님의 인가를 받은 뒤에는 금강산과 묘향산 등에 몸을 숨기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며 수행에만 집중했다. 경허 스님 열반 후 북방으로 올라가 60세의 노구에도 농가의 일꾼으로 지냈다고 전한다. 말년에는 만주 송림산 아래에 도량을 조성하고 밭을 일구며 참선 수행하여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실천했다. 대은 스님은 1928년 3월에 발행된 『불교』 제45호에 게재한 「불교의 경제관」이란 글에서 “우리 조선 교계(敎界)의 수월(水月), 혜월(慧月), 한암(寒岩) 제사(諸師)의 생활을 보든지 백용성(白龍城) 선사의 생활과 사업을 보드래도 명약관화한 일이다.”라고 수월 스님을 언급하고 있다. 만주에 머문 지 8년째인 1928년 점심공양을 마치고 목욕재계한 후 새 옷과 새 짚신을 머리에 얹은 채 조용히 원적에 들었다. 상좌로 묵언 스님이 있다. 1929년 『불교』 제55호에는 스님의 원적 소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대선지식 수월대선사께서 음(陰) 무진(戊辰, 1928) 7월 16일 미시(未時, 오후 1시~3시) 중화민국 多甸子羅在溝干(다전자라재구간) 화엄사에서 열반하섯슴니다. 전기(前記) 전수월(全水月) 대선사께서 연전(年前) 기유(己酉, 1909) 9월 17일부터 중화민국 靑溝干(청구간) 관음사에 주석하시다가 경신(庚申, 1920) 7월 16일에 다시 삼백리정(三百里程)을 환귀하샤 전기(前記) 주소에서 청풍납자를 회집(會集) 하야 수선안거하다가 전기 일자에 하안거를 해제하고 오후 미시(未時)에 안연(晏然)히 열반에 취(就)하심으로 선중(禪衆)은 비애(悲哀)를 극(極)하야 5일 후에 다비식을 봉행함애 7일 대방광(大放光)하얏다는 보도가 함경북도 경원군 명월사(月明寺) 주지 김취담(金翠潭) 사(師)로부터 본사(本社)에 도착하얏기 자(玆)에 착고(着告)함니다.
· 집필자 : 이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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