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수월 영민 |
|---|---|
| 한자 | 水月永旻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다라니, 용성 |
| 시대 | 조선 후기 |
| 출생 | 1817년 |
| 입적 | 1893년 |
| 호 | 수월(水月) |
| 주요 주석처 | 천장암(천장사) |
참선과 다라니 수행 병행한 수좌
1817년 3월 11일 경북 의성현 후죽리(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진남(金鎭南), 본관은 의성이다. 모친은 안동 권씨이다. 어려서 친구들과 시냇가에서 돌로 부처님을 만들고 모래를 공양미라 바치며 노는 등 불연이 깊었다. 효심도 깊어 어머니가 “전생부터 부처님 제자이니 나중에 출가하여 큰 뜻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고 17세에 의성 고운사에서 청파(淸波)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송암(松庵)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원두타(元頭陀) 스님과 고운사 남암(각화사 남암이라고도 전함)에서 10년 결사에 이어 화담(華潭) 스님 법문을 들으며 정진했으며, 이후에는 제방선원을 순력하며 선지식 회상에서 공부의 깊이를 더했다.
노년에는 군위 압곡사에 주석하고, 금강산 수미탑과 운달산에서 정진했다. 1866년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1867년 태백산 갈래사(葛來寺, 지금의 정암사)에서 수행했다.
1864년에서 1866년까지 3년간 51과의 사리가 출현하는 이적(異蹟)을 보였다. 비문에 기록된 사리 출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64년 3월 상순 어금니에서 2과, 3월 초하루 오른쪽 눈에서 1과, 3월 15일 두 눈에서 4과, 12월 29일 왼쪽 눈에서 3과, 오른쪽 눈에서 2과. 1865년 윤 5월 18일 왼쪽 눈에서 7과, 오른쪽 눈에서 9과, 5월 24일에는 왼쪽 눈에서 2과. 1866년 4월 8일 두 눈에서 14과, 12월 29일 왼쪽 눈에서 3과, 오른쪽 눈에서 2과, 어금니 사이에서 2과.
1872년 가을 육련(陸蓮)이 솟아나는 신비로운 일이 생겼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와 ‘생사가 큰일이요, 세월은 빠르니 어찌하면 견성을 하오리까?’하니, 수월 스님이 ‘시대가 말법이어서 법은 멀고, 근기가 둔하여 빨리 들어가기 어려우니, 먼저 천수다라니를 많이 외워 업장이 소멸되면 마음이 열리리라’ 하였다고 전한다.
1893년 12월 13일(음력) 대중에게 팔을 들어 보이고 세수 77세, 법랍 61년으로 원적에 들었다. 제자들에게 “내가 갈 때 너희들은 소리 내어 울지 말고 빈소를 마련하지도 말고, 곧 다비하거라.”라고 당부했다.
제자는 징담(澄潭), 영담(影潭), 만은(晩隱) 스님이 있고, 수계 제자로 구연(九淵), 일해(一海), 담익(曇益), 영곡(靈谷) 스님이 있다. 의성 고운사에 비문이 있다. 비문은 종두법을 실시해 천연두를 퇴치한 지석영의 형인 지운영이 지었다. 지운영은 수월 스님 비문을 쓴 까닭에 대해 “그 누군들 찬탄하지 않겠는가.”라면서 “화상의 거룩하신 유적이 구전(口傳)에만 그칠까 염려하여 제자인 만은 스님이 사실을 기록한 글을 가지고 찾아왔다.”라고 했다.
· 집필자 : 이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