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성해 남거 |
|---|---|
| 한자 | 聖海南居 |
| 유형 | 인물 |
| 키워드 | 통도사, 명신학교, 구하 |
| 시대 | 근대 |
| 출생 | 1854년 |
| 입적 | 1927년 |
| 호 | 성해(聖海) |
| 주요주석처 | 의성 고운사, 태백산 정암사 |
| 탑소재지 | 의성 고운사 |
불지종가 통도사 일신한 총섭
1854년 6월 7일 경남 양산군 서생면(지금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김탁진(金鐸振), 본관은 김해이다. 모친은 밀양 박씨(朴氏).
17세에 기장군 장안사에서 취룡 태일(鷲龍泰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사미계는 해령(海嶺) 스님에게 받았으며, 1880년 은사를 모시고 통도사로 주석처를 옮겨 수행했다. 1881년 통도사에서 율사 만하 승림(萬下勝林) 스님에게 대소승계(大小乘戒)를 수지했다.
눌암(訥庵) 스님 문하에서 강원을 마치고 참선 수행에 몰두했다. 선교(禪敎)와 더불어 삼보 호지 또한 중요한 수행이라 여겼다. 생전에 “출가인이 비록 대도(大道)는 성취하지 못해도 물질로 인하여 중과(重過)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통도사 경리주관(經理主管, 재정)과 불량도감(佛糧都監, 곡식 관리)을 역임하며 정재를 수호하고 불사에 헌신했다. 통도사 황화각 경리로 있으면서 토지 100여 두락(斗落)을 매입해 사찰 재산으로 기증했다.
1892년 통도사 승통(僧統)에 취임해 사찰을 일신하고 불지종가이자 수행종가의 초석을 놓았다. 1904년 통도사 총섭(總攝), 1906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 원장을 맡았다. 1906년 신식교육기관인 명신학교(明新學校)를 설립했다. 총섭 재임 시 황화각과 동곡루를 중수했으며, 1911년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보수할 때 감역(監役, 감독)으로 총지휘했다. 1914년 보광선원(普光禪院) 원장으로 납자들을 지도했으며, 만공, 혜월, 성월, 침허 스님 등 선지식과 장지연, 서석재 등 저명인사들이 회갑을 축하하는 시를 지어 전했다.
1927년 12월 29일(음력) 자시(子時)에 세수 74세, 법랍 58세로 입적했다. 비와 진영은 통도사에 봉안돼 있다. 진영의 찬은 한암 스님이 지었는데, 『한암집』에도 실려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勤護三寶(근호삼보) 부지런히 삼보 수호하기를
一片赤心(일편적심) 일편단심이었네,
參尋祖意(참심조의) 조의를 참구하여
透脫古今(투탈고금) 고금을 꿰뚫었네,
來耶去耶(내야거야)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明月胸襟(명월흉금) 밝은 달 흉금일세
靈鷲山屹(영축산흘) 영축산 높이 솟고
洛東江深(낙동강심) 낙동강 깊노라.
제자로 구하 천보(九河天輔), 재하 법성(齋河法晟), 경봉 정석(鏡峰靖錫, 1892~1982), 경하 달윤(鏡河達允) 스님이 있다.
· 집필자 : 이성수




